소송전서 드러난 특수 관계···'교수 성폭행' 무고죄 뒤집혔다

대법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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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된 내연관계였다”라고 주장하는 지도교수와 “교수님의 지위에 눌려 당한 성관계”라고 주장한 제자. 두 사람의 엇갈린 주장 속에 제자 A씨는B교수에 대한 무고죄로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A씨의 2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이 주목한 건 제자 A씨와 교수 B씨 사이 특수한 관계였다.
 

교수-제자인 줄 알았는데…소송전에 드러난 관계

홀로 자녀를 키우며 심리학 석사과정에 진학한 A씨는 자격증을 따려 수련생으로 등록한 상담센터에서 B교수를 만나게 된다. 수련생과 수련지도자로 만났지만 B교수 권유로  따로 개인 심리상담도 받아왔다. 이후 B교수가 있는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지도교수와 제자로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던 A씨와B씨의 관계가 추가로 드러난 건 B교수 부인의 이혼소송 이후다. B교수 부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다 숙박업체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포착했고, B교수에겐 이혼소송을, A씨에겐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A씨는 이후 “B교수가 지위를 이용해 나를 상습적으로 간음했다”며 고소장을 낸다. 반대로 B교수는 A씨를 무고죄로 고소한다.
 

하급심, “무고 맞다”…1심 집행유예ㆍ2심 징역 1년  

이렇게 열린 무고 재판에서 1ㆍ2심은 모두 A씨의 무고 혐의를 인정했다. “그루밍 수법(가해자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길들이는 방법)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라는 A씨의 주장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나 평소 두 사람의 관계, B교수를 고소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춰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었다. 또 A씨가 고소 2개월여 만에B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고, B씨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은 점도 근거로 판단했다. 1심은 A씨에게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을, 2심은 A씨의 죄를 더 무겁게 봐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뒤집힌 ‘무고 유죄’…‘3중 중첩관계’ 주목한 대법원

그런데 대법원은 A씨에게 내려진 실형을 무죄 취지로 파기했다. 먼저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를 신고한 사실에 대해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그 자체를 무고죄의 적극적인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무고 혐의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신고한 내용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검사가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A씨 입장에서는 B씨의 행동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다. 한국상담심리학회 등 국내외 심리학 관련 학회들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 성적 관계를 엄격히 금지한다. A씨와 B교수의 관계를 일반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심리상담 전문가로서의 윤리의식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관계로 바라본 것이다.  
 
A씨와 B씨 사이에는 세 종류의 관계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두 사람은 전문심리상담 수련생과 수련지도자의 관계로 시작해 개인 심리상담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가 됐다. 더 나아가서는 대학원 박사과정 제자와 지도교수의 관계까지 추가됐다. 대법원은 이를 단순한 제자-지도교수 사이 위계 관계와도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는B씨에게 내면의 모든 고민과 상처를 고백하고 해결책을 상담받아왔고, 이 과정에서 A씨가 B씨의 권위에 복종하거나,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단 지적이다.
 
 

대법원 "피해자 대처 양상, 상황에 따라 달라"

1·2심이 신빙성이 없다고 본 A씨의 행동에 대해서도 달리 판단했다. A씨는 평소 B씨와 친밀한 연락을 주고받고, 문자메시지 등으로 B씨에게 행복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성폭력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내밀한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피해 사실을 자녀들이 알게 될까 두려웠고, 따로 개인 상담을 받으며 7000만원 이상 돈도 따로 냈는데 신고를 하게 되면 더는 일도, 박사과정도 진행할 수 없게 될까 우려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A씨 주장에 대해 “겉으로는 B교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면적으로 갈등하는 상황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판결문에 썼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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