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막더니…대선전 대법관 지명한다는 트럼프 '내로남불'

18일(현지시간)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자신의 후임을 차기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주 후임을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인준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8년 재판정에서의 모습. [AF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자신의 후임을 차기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주 후임을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인준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8년 재판정에서의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를 46일 앞두고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간 '전쟁'이 시작됐다. 대법관 성향은 미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제기될 법적 다툼에도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주에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온다. 후임 대법관 인선은 차기 대통령 몫이라고 주장한다. 4년 전 같은 상황을 거론하며 공화당의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다음 주에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할 것"이라며 "여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다음 주에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할 것"이라며 "여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가 후임 대법관 임명하면 대법원 보수로 확 기울어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다음 주 (대법관) 지명자를 발표할 것"이라며 "여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임 인선 과정과 관련해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현재 상원 의석은 공화당 53석, 민주당과 무소속 47석으로 공화당에 유리하다. 이런 상황을 노리고 백악관이 진보 성향 대법관이 비운 자리를 보수 성향으로 채우려고 서두르는 것이다.
 
미 대법관 9명의 이념 지형은 긴즈버그 대법관을 포함해 진보 4명, 보수 5명이었다. 긴즈버그 후임에 보수 성향 인물이 임명되면 보수 6명, 진보 3명이 돼 대법원이 보수 성향으로 확 기울게 된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최근 손녀에게 "내 가장 강렬한 소망은 새 대통령 취임 때까지 내가 교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구술했다고 미 공영라디오 NPR은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은 긴즈버그의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에서 공석인 대법관 선출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자 의무라면서 지체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하는 후보자에 대해 미국 상원은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 대해 청문회와 표결을 모두 거부한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주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 대한 상원 인준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주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에 대한 상원 인준 표결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공화당, 4년 전엔 "차기 대통령이 임명해야"…내로남불 

미국 정계는 4년 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다만, 공수는 뒤바뀌었다. 2016년 2월 보수 성향의 앤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후임으로 3월 메릭 가랜드 후보자를 지명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이끄는 상원은 표결을 거부했다.
 
당시 매코널은 "대통령이 지명할 권한이 있듯이 상원은 동의를 제공하거나 유보할 헌법적 권리를 갖는다. 이번에 상원은 권리를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선거가 너무 임박했다는 이유였다. 당시는 선거로부터 8~9개월 전이었지만, 지금은 불과 6주밖에 안 남았는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도 트럼프의 후임 대법관 지명을 지지했다. 그는 2016년 오바마의 대법관 지명을 앞장서서 저지하면서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에 대법관 공석을 메우려고 한다면 똑같이 하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당시 공화당이 오바마의 대법관 지명을 저지하면서 든 근거는 일명 '바이든 룰'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이 상원의원이던 1992년 상원 연설에서 "정치 시즌이 진행 중일 때는 대법관 지명은 선거 캠페인이 끝날 때까지 연기돼야 한다"고 한 주장이 바탕이 됐다.
 
19일 밤 시민들이 미국 대법원 앞에 모여 전날 사망 소식이 알려진 루즈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추모하고 있다. 진보 성향 대법관이 빠진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법원의 우편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P=연합뉴스]

19일 밤 시민들이 미국 대법원 앞에 모여 전날 사망 소식이 알려진 루즈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추모하고 있다. 진보 성향 대법관이 빠진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법원의 우편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수화 절호의 기회' vs '큰 우려'…불붙은 진보·보수 대결

민주당은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 지명은 11월 3일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원이 후보자에 대한 인준 투표를 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후보는 전날 긴즈버그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그 대통령이 대법관을 뽑아 상원에 인준을 요청해야 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바이든 룰'을 재차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에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은 적어도 2명의 공화당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대법관 후보자를 지명하는 데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리사 머코스키 의원과 수전 콜린스 의원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공화당에서 추가 이탈표가 얼마나 나올지가 관건이다. 진보 성향 대법관을 보수주의자로 교체해 보수 성향을 강화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은 공화당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망했다.
 
19일 미국 대법원 앞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추모하는 꽃과 촛불, 편지가 가득 놓여있다. 진보 성향 대법관이 빠진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법원의 우편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19일 미국 대법원 앞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을 추모하는 꽃과 촛불, 편지가 가득 놓여있다. 진보 성향 대법관이 빠진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법원의 우편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보수화 가능성에 긴장한 민주당도 결집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온라인 모금 플랫폼인 '액트 블루'(Act Blue)의 시간당 모금액은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 소식이 알려진 전날 오후 9시 620만 달러로 신기록을 세웠고, 한 시간 뒤인 오후 10시 630만 달러로 다시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 내 양극화는 이미 정상 범위를 벗어났는데, 대법관 지명 이슈로 더 벌어졌다"면서 긴즈버그 사망으로 진보와 보수 간 대립이 거세지고 이번 대선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될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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