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LVMH 무찌르고 코로나에도 승승장구 비결은 '가족 경영'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인 실크 스카프. 로고가 보인다. AFP=연합뉴스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인 실크 스카프. 로고가 보인다. AFP=연합뉴스

전염병은 명품업계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콧대 높은 명품업체 프랑스의 에르메스(Hermès)다. 매출과 주가 모두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를 강타하며 명품업계의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 기업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와 케링 모두 코로나19 이후 시가총액이 줄었다. 중국 시장의 판매가 줄면서 매출이 줄어든 영향이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달랐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한 초기인 지난 3월 말 525억 유로로 저점을 찍은 뒤 오히려 상승했다. 올해 시가총액은 780억 유로(약 107조1100억원)에 이른다. 에르메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업계 최고 수준의 증가율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주 발행한 최근호에서 에르메스를 집중 조명한 배경이다. 
지난 7월 미국 뉴욕에서 에르메스 쇼핑을 즐기고 나온 여성들. AP=연합뉴스

지난 7월 미국 뉴욕에서 에르메스 쇼핑을 즐기고 나온 여성들. AP=연합뉴스

에르메스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창업한 장인 기업이다. 주로 가죽 마구를 만들던 곳이다. 에르메스 로고에 마차와 마부가 있는 이유다. 이후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며 가방 등 가죽 제품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유리 및 크리스털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에르메스가 흔들림 없이 명품업계의 왕좌를 지켰던 것은 아니다. LVMH와의 소송전 등을 우여곡절을 겪으며 작지만 강한 가족 경영 기업이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자손들 사이의 재산 분쟁 등을 겪던 에르메스는 1993년 기업공개(IPO)를 했고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주의 6대손인 악셀 뒤마기 최고경영자(CEO)로 나서며 가족 경영 체제로 복귀했다. LVMH가 에르메스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악셀 뒤마, 에르메스 CEO. 창업주의 6대손이다. [중앙포토]

악셀 뒤마, 에르메스 CEO. 창업주의 6대손이다. [중앙포토]

프랑스 최대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LVMH) 그룹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최대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LVMH) 그룹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2010년 LVMH가 에르메스를 인수할 거란 소문이 파다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에르메스에 지분 17%를 획득하며 선전포고를 날렸을 정도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아르노 회장은 감각과 수완이 좋지만, 공격적 인수 방식으로 인해 업계에선 '(명품)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라는 이미지가 있다"며 “에르메스 가방과 넥타이를 아끼던 은행가들은 ‘한 시대의 종말’이라며 슬퍼했다”고 전했다. 
 
이후 에르메스는 LVMH와 지난한 소송전 등을 겪으며 기업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고, 기업을 더 크게 키워냈다. 
 
이코노미스트가 주목한 성공의 비결은 에르메스 특유의 가족 경영체제다. LVMH가 인수 의향을 드러내기 전, 에르메스의 지분 약 60여명에 달하는 후손들에게 나눠져 있었다. LVMH가 개별 주주를 별도로 접촉하면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추산이 가능했다. 이에 에르메스 측은 “적어도 2031년까지는 50% 이상의 지분은 팔지 않는다”는 합의를 했고, 이에 아르노 회장은 2017년 백기를 들었다.   
 
단순히 버티기만 한 건 아니다. 생존 전략을 모색했다. 에르메스 인수에 나서던 당시 LVMH 아르노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에르메스가 공항 면세점에서 세일을 과도하게 해서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렸고 최신 트렌드에도 둔감하다”고 비난했다. 
 
에르메스가 택한 위기 타개책은 사업 방식의 전면 전환이 아니었다. 버킨 백과 같이 1만 달러를 쉽게 호가하는 제품을 기존의 장인 방식으로 생산하되, 평생 AS를 책임지는 방식을 택했다. ‘명품다운 명품’으로서의 희소성을 지켜낸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잘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잘한 것, 이것이 에르메스의 현명함”이라며 “디오르 정장은 한 철만 유효하지만 에르메스 가방은 평생 든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강조했다. 
에르메스의 도자기 스케이트보드. 500만원이다. [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의 도자기 스케이트보드. 500만원이다. [에르메스 홈페이지]

전통과 희소성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통해 영역을 확대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애플과 손잡고 애플 워치 명품 라인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로 만든 스케이트보드’처럼 실용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명품 브랜드만이 만들 수 있는 제품도 만들고 있다. 3320파운드(약 500만원)인 스케이트보드에는 “실제로 탈 수 있음”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애플이 에르메스와 손잡고 만든 애플 워치. AFP=연합뉴스

애플이 에르메스와 손잡고 만든 애플 워치. AF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에르메스에 남은 과제 하나는 ‘디지털 느림보’라는 별명을 떨쳐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에르메스의 수익 중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것은 약 3% 수준에 불과하다. 이코노미스트가 주목한 것은 뒤마 CEO가 최근 화장품 사업을 강조하라는 지시다. 1000만원이 훌쩍 넘는 가방보다는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립스틱 등으로 디지털 판매를 확대하는 한편 브랜드 접근성을 낮춰 젊은 세대를 공략한다는 전략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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