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형벌, 또 하나의 불공정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가 처벌을 면하게 됐다. 검찰이 기소를 유예했다. 죄는 있지만 재판에 넘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번 봐준다’는 것이다. 검찰이 베푼 은전(恩典) 덕에 별일 없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지난해 초 한 대기업이 제품 수리기사 고용 형태를 본사 직고용으로 바꿨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독려에 박자를 맞춘 일이었다. 그런데 150여 명이 직고용에서 배제됐다. ‘기소유예’라는 꼬리표가 문제가 됐다. 이들은 고객에게서 건네받은 스마트폰 액정을 중국산으로 바꿔 회사에 낸 혐의(업무상 횡령)로 경찰·검찰 수사를 거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중 열 명은 헌법재판소에 억울함을 호소해 기소유예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이후 어엿한 정규직 직원이 됐다. 헌재 재판관들은 횡령의 증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봤다. 나머지 기사들은 기소유예 처분으로 인한 불이익을 예상하지 못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결국 구제되지 않았다. 헌재에 기소유예 취소를 요청하는 것은 검찰 처분 뒤 90일 이내에만 가능하다.
 
임 교수도 임용, 취업, 공직 진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국가가 5년 뒤에 기록을 삭제한다. 그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의향을 나타냈는데, 헌재의 기소유예 취소 비율은 약 20%다. 향후 그가 다른 일로 피의자가 되면 검찰은 칼럼 사건을 병합해(공소시효가 남아 있을 경우) 기소할 수도 있다. 그의 표현의 자유에 납덩이가 매달렸다.
 
한 월간지 기자 출신 유튜버는 두 달 전 징역 8개월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를 청와대 근처에서 만났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명예훼손) 때문이었다. 이 형벌이 합당한지, 과도한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에 대한 처벌을 생각하면 법의 저울이 평평해 보이지 않는다. 법원에서 인정한 뇌물 수수액이 4200만원인 그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구속 상태에서 벗어났다.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목포시 부동산 문제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 형을 받았는데 법정에서 구속되지는 않았다. 누구는 훨씬 중한 벌을 받고도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데 다른 누구는 헛소리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수형자가 된다.
 
조 전 장관 동생은 그의 일가가 운영해 온 학교의 교사 채용시험 문제를 빼돌려 준 대가로 1억4700만원을 받아 징역 1년형에 처해졌다. 그에게 돈을 전달한 공범 두 명은 앞서 열린 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과 1년을 선고받았다. 문제를 유출하고 최종적으로 돈을 받은 것은 조 전 장관 동생이다. 대학교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젊은이는 벌금형을 받아 전과자 신분이 됐다. 법원은 그가 대학에 ‘침입’했고, 그게 죄라고 했다.
 
『법가의 나라 조선과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낸 역사연구가 이윤섭씨는 조선왕조의 장수 비결을 ‘감시와 처벌’로 설명했다. 조선은 개국 2년 뒤인 1394년부터 1895년(고종 32년)까지 야간 통행을 금지했다. 세계사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기 힘들다. 오가작통(五家作統)이라는 제도도 있었다. 하나의 통으로 묶인 다섯 집이 서로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처벌이 가혹하기도 했다. 명나라에서 온 중국 관리 류황상(柳黃常)이 “명나라 형법인 대명률을 따른다는 나라가 왜 그리 형벌 제도가 미개하냐”고 조선 조정을 꾸짖은 적도 있다(선조실록).
 
조선에선 임금과 세도가들이 형벌을 정치적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반대자 입에 재갈을 물리는 데 썼다. 민주국가 한국 청와대엔 춘풍추상(春風秋霜·자신에겐 가을 서릿발처럼, 남에게는 봄바람같이)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그런데도 요즘 검찰과 법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런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가 지금 조선시대에 살고 있나?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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