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북한 만행 5시간 지켜보기만…“설마 그럴 줄 몰랐다”

북한군에게 사살당한 공무원 이모씨가 실종 당시 어업지도선 우측 선미에 벗어 놓은 슬리퍼. 해수부는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놓아 단순 실족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진 인천해경]

북한군에게 사살당한 공무원 이모씨가 실종 당시 어업지도선 우측 선미에 벗어 놓은 슬리퍼. 해수부는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놓아 단순 실족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진 인천해경]

군은 북한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지 하루 반나절이 지난 24일 오전에야 공식 설명에 나섰다. 설명을 종합하면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려 빨리 발표하지 못했고 ▶북한 해역이라 대응에 한계가 있었으며 ▶북한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군의 대응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씨의 실종 사실이 알려진 것은 21일 오전 11시30분, 북한군이 그를 사살한 것은 22일 오후 9시40분이었다. 군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하지만, 22일 오후 3시30분에 누군가가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과 접촉하는 정황을 포착했고 오후 4시40분에는 그 사람이 이씨라고 특정했다.
 
그로부터 사살까지는 5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군은 북한에 연락을 취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사건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벌어진 만큼 해군 함정을 보내 무력시위라도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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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북한 해역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사살) 당시엔 위치를 몰랐고, 위치를 정확히 추정한 것은 오후 10시11분쯤”이라고 설명했다. 또 “북한이 설마 그런 만행을 저지를 줄 몰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이미 지난 10일 학술행사에서 “중국과의 국경에서 1~2㎞ 떨어진 곳에 북한의 특수전 부대가 배치돼 있고 (무단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이들을) 총으로 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국경 쪽에서 (사살)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이런 조치가 우리 (남북 간) 국경에도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군의 언론 대응도 문제였다. 군과 청와대의 설명대로라면 23일 오전 8시30분 이씨가 사살됐다는 보고가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갔다. 대면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23일 낮에야, 그것도 ‘실종 사건’으로 출입기자단에 공지를 했다. “수색을 통해서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22일 오후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 분석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사살됐고, 시신이 불탔다는 소식은 23일 밤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이때도 군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내일 오전 관련 보도에 대해 설명하겠다”고만 했다.
 
대통령 지시가 있고도 만 하루 이상 지나 설명이 이뤄진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유엔사령부를 통한 사실 확인을 거치려 한 것이 23일 오후 4시30분이어서, 북한을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밝히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게 사실인지 북한에 먼저 물어야 해 한국 민간인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엄중한 소식을 국민에게 알리는 건 뒤로 미룬 셈이다. 이는 “북한이 부인했다면 알리지 않았을 것이냐”는 반문으로도 이어진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24일 저녁에도 출입기자단에 “북한 해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하지만 이처럼 변명에 급급한 군의 태도는 ‘국가는 나라 밖에 있는 국민도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2조 2항) 정신을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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