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쟁 중에도 수업한 나라”…김명중 EBS 사장 인터뷰

경기도 일산 EBS 본사 주조정실에 선 김명중 사장.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일로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EBS가 교육공영방송사로서 학습공백과 학습결손을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꼽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기도 일산 EBS 본사 주조정실에 선 김명중 사장.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일로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EBS가 교육공영방송사로서 학습공백과 학습결손을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꼽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학교 수업은 멈출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전쟁 중에도 학교 수업을 한 국가다.”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초유의 비상 상황에서 원격 교육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 EBS 김명중(63) 사장의 목소리는 사뭇 비장했다. EBS는 지난 4월부터 방송과 인터넷 ‘온라인 클래스’ 시스템을 통한 원격 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등교 수업이 막힌 전국 초중고교의 학습 공백을 메꾸는 데 결정적인 몫을 담당했다. ‘온라인 클래스’는 전국 1만1710개 초중고교 중 1만1306곳(96.5%)이 활용하는 원격 교육 플랫폼으로 자리잡았고, 당초 지난 11일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TV 생방송 ‘온라인 개학’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다음달 30일까지 이어진다.
 
16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에서 만난 김 사장은 “새벽 4시에 출근해 리허설을 하고 오전 9시 학교종이 울리는 시간에 생방송 수업을 내보내는 등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EBS 없었으면 어쩔뻔 했냐’는 국민들의 반응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며 지난 반 년을 돌아봤다.
 
지난 4월 20일 온라인 개학 첫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EBS TV로 방송 수업을 시청하는 모습. [중앙포토]

지난 4월 20일 온라인 개학 첫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EBS TV로 방송 수업을 시청하는 모습. [중앙포토]

EBS의 원격 수업은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시스템이다. 해외 언론의 관심도 컸다.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Handelsblatt)는 지난 2일자 신문에 ‘국가적 차원의 온라인 학교’란 제목의 기사를 싣고 EBS의 수업을 소개하며 “EBS 김명중 사장은 팬데믹 시대 교육의 선구자”라고 했다.  
 
누구도 예측 못한 비상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시스템을 마련해야 했는데, 난감한 상황은 없었나.  
“1학기 개학이 계속 늦춰지는 상황에서 3월 9일 TV를 통한 수업 ‘라이브 특강’을 시작했다. 당시 준비 기간은 단 나흘. 154명의 인원을 긴급 차출해 12개 생방송 학습 채널의 콘텐트 제작과 운영에 투입했다. 매주 250시간의 수업 콘텐트를 단 한 번의 차질 없이 무사히 실시간으로 방송했으니, EBS 내부 저력을 스스로 확인한 기회이기도 했다. ‘라이브 특강’은 원격 교육 플랫폼 ‘온라인 클래스’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온라인 클래스’는 처음엔 대구ㆍ경북 지역 고교생을 대상으로 서비스 해달라는 교육부 요청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의 300만 중고생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동시접속자 2000명이 가능했던 플랫폼을 2주 만에 3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1500배 확장시켜야 했던 것이다. 백척간두에서 선 기분이었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대안이 없으니 도전해야 했다. 휴일도 없이 전 직원이 비상근무를 했다. 노동법 준수했으면 못할 격무였다. 나도 2주 동안 사장실에 이동식 침대를 갖다두고 숙식을 해결했다.”
 
EBS의 원격 교육 시스템을 보도한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9월 2일자 신문. [사진 EBS]

EBS의 원격 교육 시스템을 보도한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9월 2일자 신문. [사진 EBS]

김 사장이 ‘원격 교육’ 시스템에 거는 기대는 크다. 단순히 이번 코로나 고비를 넘기자는 수준이 아니다. “태풍ㆍ홍수ㆍ폭설이나 미세먼지 등 재해 상황에서 학교 수업을 대체할 유용한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베트남ㆍ캄보디아ㆍ우즈베키스탄 등도 EBS 모델에 관심이 많다. ‘K에듀’로 발전시키면 수출 전략 상품으로서의 가능성도 크다. 시스템ㆍ장비뿐 아니라 콘텐트ㆍ포맷 등을 수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학자 출신으로 지난해 3월 사장 임기를 시작한 그는 역대 EBS 사장 중 가장 유명한 이름이기도 하다. 수시로 “김명중”을 외치는 펭수 덕이다.  
 
펭수 캐릭터 인형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명중 EBS 사장. "EBS가 펭수를 계기로 모바일 퍼스트 시대의 콘텐트 리더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펭수 캐릭터 인형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명중 EBS 사장. "EBS가 펭수를 계기로 모바일 퍼스트 시대의 콘텐트 리더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4월 EBS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에서 첫 선을 보였던 펭수는 이제 대세 캐릭터가 됐다. 광고모델, 라이선스 상품 등으로 100억 원이 넘는 수익도 올렸다. 성공 비결을 꼽아본다면.  
“경계와 금기를 뛰어넘는 펭수의 ‘용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사장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불러대는 펭수에게서 사람들이 탈권위 시대의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제작진도 지금까지 EBS 프로그램이 의식ㆍ무의적으로 갖고 있었던 한계와 안전선을 뛰어넘는 ‘용기’를 발휘해 혁신적인 콘텐트를 성공시켰다. 펭수가 시청자들과 진정한 소통을 한 것 역시 성공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펭수의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 구독자 수는 200만 명이 넘는다. 매 에피소드마다 수천 개씩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펭수가 팬들에게 공감과 웃음, 위로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이야기가 펭수 세계관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팬들이 바로 지적한다. 마치 팬들이 펭수를 신탁통치하는 식이다. 이게 바로 완벽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지난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펭수 사인회. [사진 EBS]

지난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펭수 사인회. [사진 EBS]

김 사장은 “구독자 200만 명을 돌파하면 외신 기자 대상 설명회를 하기로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곧 새로운 캐릭터를 론칭할 예정”이라고 귀띔하며 “새 캐릭터의 플랫폼도 ‘선지상파 후OTT’ 서비스라는 고전적 문법을 벗어나 ‘선OTT 후지상파’ 전략으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TV수신료 2500원 중 EBS가 배분받는 몫이 70원이란 사실이 최근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에 대한 EBS의 입장은 무엇인가.  
“EBS 올해 예산 2786억 원 중 공적재원은 845억원으로 30%를 차지한다. 수신료 수입은 총 192억원으로 총예산의 6.9%에 불과하다. 수신료 2500원 중 징수 기관인 한전 몫이 170원이다. 가가호호 방문해 징수하던 시절의 관행대로 배분한 셈인데, 그 비용을 현실화시켜 단기적으로는 그 일부라도 EBS 몫으로 해주면 좋겠다. 장기적으론 ‘공영방송 재정수요 조사위원회’ ‘수신료 산정위원회’ 같은 논의기구가 설치돼 어느 방송사에 어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한지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산출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교육공영방송 예산의 70% 정도는 공적재원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3년 사장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일로 “사회적 재난시 교육 주관방송사에 대한 법적 뒷받침 마련”을 꼽았다.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 의원 합의를 거쳐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간 상태”라며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시스템 구축이 원활해지고 운영 관리의 책임도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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