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 싸게 사 환전"…9조 풀린 지역화폐 '현금깡' 횡행

현재 전국 226곳의 지자체 중 216곳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지역 내 소비 진작을 위해 상품권은 통상 액면가의 90%에 판매한다. 통상 할인된 가격의 8%는 정부에서, 나머지 2%는 각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액면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특성을 활용해 '현금깡' 등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현재 전국 226곳의 지자체 중 216곳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지역 내 소비 진작을 위해 상품권은 통상 액면가의 90%에 판매한다. 통상 할인된 가격의 8%는 정부에서, 나머지 2%는 각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액면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특성을 활용해 '현금깡' 등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1. 경기 성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3월 성남시에 지역사랑상품권 6000만원을 환전 신청했다. 하지만 성남시 조사 결과 A씨가 상품권 매출이라고 주장한 6000만원은 대부분 ‘현금깡’에 해당하는 불법 환전인 것으로 드러났다.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10% 가량 싸게 현금으로 매입한 뒤 이를 가게 매출로 속여 다시 관할 지자체에 환전한 것이다. 성남시는 A씨의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주 자격을 박탈하고 부당이익을 전액 환수했다.
 
#2. 경남 거제시는 지난해 4월 상품권 환전요청 금액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가맹점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7곳의 가맹점을 적발했다. 문제가 된 가맹점은 모두 상품권을 현금으로 불법 매입해 지자체를 통해 환전하는 현금깡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이들 가맹점이 환전을 신청한 금액에 해당하는 매출 증빙 서류가 없었고, 가게를 운영하지도 않으면서 가맹점 매출이라고 허위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지역사랑상품권이 현금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10% 정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고객과 가맹점이 늘어서다. 100만원 어치 상품권을 90만원에 구입한 고객이 이를 가맹점에 95만원에 되팔아 5만원의 차액을 남기는 식이다. 가맹점은 95만원에 구입한 상품권을 지자체에 환전해 5만원의 차액을 남길 수 있다. 상품권을 현금화하려는 일부 시민과 이를 사들여 차액을 남기려는 가맹점 간 상품권 불법 유통 고리가 형성된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역사랑상품권을 도입한 지자체 216곳 중 11곳(경기 성남·김포, 충남 서천·부여, 경남 거제, 경북 포항, 전남 완도·해남, 전북 군산, 강원 철원·양구)을 제외하곤 현금깡 등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한 단속 인력조차 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전국 216곳 지자체에 대한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사례를 전수 조사한 결과다. 단속 인력을 운용 중인 11곳의 지자체에선 지난 3년간 총 76개 가맹점이 상품권을 부정 유통하다 적발됐다.
 
현금깡은 지역 화폐의 실효성을 저해하는 주요 불법행위중 하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15일 ‘지역 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출산지원금, 청년배당 등 현금성 복지혜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면서 비자발적으로 지역화폐를 갖게되는 경우가 생긴다”며 “이 경우 시장가격보다 싼 값을 받고서라도 상품권을 현금화하고자 하는 현금깡 시장이 형성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역화폐의 안정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해 현금깡 시장을 단속하는 데에도 상당한 행정력과 비용이 낭비된다”고 분석했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현금깡 등 지역사랑상품권이 불법 유통된 사례를 들어 각 지자체의 실효성 있는 조사와 단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현금깡 등 지역사랑상품권이 불법 유통된 사례를 들어 각 지자체의 실효성 있는 조사와 단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박 의원은 정부와 각 지자체가 불법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해결책 없이 상품권 발행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는 약 9조원 어치다. 상품권 제작 비용과 상품권 할인 유통을 위해 각 지자체에 지원한 예산은 6690억원에 달했다.   
 
박 의원은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지역사랑상품권 제도를 확대하고 있지만 손쉽게 부정 유통자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상품권 유통에 예산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그 효과를 분석하는 한편 각 지자체는 현금깡 등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조사와 단속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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