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의 '박근혜 사람' 신임…女는 유명희, 男은 이 사람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역시 길게 가니까 성과가 나타나네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행 역사상 44년 만에 연임에 성공해 6년 반째 중앙은행 총재직을 이어가고 있는 이주열 한은 총재에 대한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이 총재가 이룬 성과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고 한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문 대통령은 그를 연임시켰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이 총재가 이룬 성과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다고 한다. 이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문 대통령은 그를 연임시켰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 취임 2년 차이던 지난 2018년 3월. ‘적폐청산’을 제1 공약이자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던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한국은행 총재로 그를 지명했다. 정계를 비롯해 금융계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이 총재를 처음 임명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박근혜 정부 당시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인하하면서 양적 완화로 경기를 부양하는 내용의 ‘초이노믹스’를 지원했다는 평가까지 받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 총재를 연임시키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문 대통령이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 총재 지명 직후 브리핑에서 “이 총재의 연임은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요 국가들은 중앙은행 총재가 오래 재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펼치도록 한다. 이 (총재) 후보자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관해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을 갖췄다”며 박 전 대통령이 이 총재를 지명한 배경을 설명했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중앙일보에 “문 대통령이 능력만 보고 ‘전 정권 사람’을 연임시킨 것”이라며 “전 정부 인사 중 문 대통령의 발탁으로 빛을 본 케이스가 여성 중에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라면, 남성 중에는 이주열 총재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연임 직후인 2018년 11월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로 선출됐다. 이사회는 주요국 중앙은행 60곳이 참여하는 BIS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한은 총재가 이사를 맡은 것은 1997년 한국이 BIS에 가입한 이후 처음이다.
 
이 총재는 지난 13일에는 미국의 금융전문 월간지 글로벌파이낸스가 매년 발표하는 중앙은행 총재 평가에서 2018년 연임 이후 3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등급은 A-였다. 일본은행 총재는 B등급, 중국 인민은행장은 C등급이다.
 
문 대통령은 이 총재와 한은에 대한 신뢰를 여러 차례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도 “경제에 대한 조사연구보고서 가운데 한국은행 자료가 가장 수준 높다”며 “그러나 한은의 독립성 때문인지 고급 조사보고서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제공해 정책에 반영되고 민간연구소도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는 고용”이라며 “고용 확대를 위해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도 이 총재에게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던 지난 3월 1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정부는 비상 정부체제로 전환한다”며 “방역 중대본처럼 경제 중대본의 역할을 하게 될 비상경제회의를 가동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 “50조원 규모의 특단의 비상 금융 조치를 결정한다. 이번 조치를 결정하는데 한국은행이 큰 역할을 해줬다”고 강조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마무리 발언에서는 이 총재에게 직접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도 이 총재의 연임 이후 통화 스와프와 관련해서도 국제금융 시장에서 확실한 영향력을 가지게 됐고 국제무대에서 발언력과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점에 대해 언급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개각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개각을 너무 자주 한다”, “장관을 너무 자주 바꾼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2011년)에서 “법무장관은 적어도 2년, 가능하면 대통령과 임기(5년)를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적도 있다.
 
이 총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와 독립성 보장이라는 태도와 달리 여당 의원들은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총재에게 집중포화를 가했다. 이 총재가 202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정부의 재정준칙에 대해 14일 “장기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한 반발이었다. 재정준칙은 국가 채무 비율을 국내 총생산(GDP)의 60%, 통합 수지 적자 비율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문받고 있다. 2020.10.16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문받고 있다. 2020.10.16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6일 국감에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은이 코로나라는 엄중한 시기에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서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정부 정책에 훈수를 두는 거냐”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정일영 의원은 “엄격한 재정준칙, 그런 얘기를 왜 했느냐”고 몰아세었다.
 
여당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많이 당혹스러우실 것 같다. 한은이 계속 독립적 목소리를 내셔야 한다”며 이 총재를 격려했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도 “혼이 나더라도 당당해야 국민들이 한국은행 엘리트집단을 따라간다. 고용 문제나 금융 문제나 당당하게 보고서를 내고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