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주택이 ‘노후 보험’ 역할하는데, 정부가 보유 막으면?

현실 무시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

부동산 매물이 게시된 런던 중개업소. 서울의 집값 상승률은 런던의 절반 수준도 안 되지만 정부는 집값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부동산 매물이 게시된 런던 중개업소. 서울의 집값 상승률은 런던의 절반 수준도 안 되지만 정부는 집값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많은 사람이 한국의 집값은 살인적으로 비싸고 어떻게든 끌어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이 믿음에서 출발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한국의 집값은 과연 얼마나 비싼 것일까? 국가별 경제지표를 제공하는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자료에 따르면 G20 국가 중 주택가격지수(Housing Index)가 한국(105)보다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102)뿐이다. 전국 단위 비교는 별 의미가 없고 대도시끼리 비교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글로벌 도시 간 주택 가격 비교는 이코노미스트가 제공한다. 서울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 비해 16% 높아졌다. 같은 기간 런던은 28% 상승했다.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암스테르담으로 66% 올랐다. 베를린·더블린·밴쿠버·토론토·샌프란시스코 등 수많은 글로벌 도시의 집값이 서울보다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서울보다 상승 폭이 작은 도시는 워싱턴DC·도쿄·싱가포르·제네바·밀라노 등이다.
 
무턱대고 집값만 비교할 게 아니라 소득에 비해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비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게 바로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다. 실증 데이터를 가지고 PIR를 국제 비교한 전문가들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이나 서울의 PIR는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고, 주택 가격이 무조건 내려가야 한다는 인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이창무 외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의 산정방식 및 그 수준에 대한 국제비교’).
  
국민이 기어코 집을 사려는 이유
 
부동산 매물이 게시된 서울의 부동산 중개업소. 서울의 집값 상승률은 런던의 절반 수준도 안 되지만 정부는 집값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뉴스1]

부동산 매물이 게시된 서울의 부동산 중개업소. 서울의 집값 상승률은 런던의 절반 수준도 안 되지만 정부는 집값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 [뉴스1]

국제 비교의 결론은 일관되다. 어떤 조건에서 비교하더라도 서울의 집값은 글로벌 도시 중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더 많이 올랐다. 더 장기간으로 놓고 비교해 보면 1990년대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그 후 상승세가 둔화되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급등하고 있다.
 
정부가 집값을 끌어내리려고 할 때마다 국민은 죽기 살기로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올리고 대출을 틀어막고, 집을 사지도 팔지도 보유하지도 못하게 하면 할수록 국민은 ‘영끌’을 해서라도 기어코 집을 사려고 한다. 왜 그러는 걸까.
 
한국의 자가소유 비율은 60% 미만으로 국제적으로는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이 집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대출을 쉽게 해주는 것이다. 독일이나 덴마크의 모델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은 이 모델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금융시장에 개입해 대출을 옥죄는 것이다. 이탈리아·그리스·폴란드·헝가리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도 최근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 방향의 종착점은 상속이다. 빚을 내서 집을 사고 그걸 조금씩 갚아가면서 계층 이동을 할 기회가 막히게 되니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방법만 남는다. 금수저는 금수저 집을, 흙수저는 흙수저 집을 물려받으니 계층 이동의 희망도 사라진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이후 자녀에 대한 주택 증여가 기록적으로 늘어난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공정사회로 가고 싶었는데 상속사회로 가고 있다.
  
미국은 주택 구입에 세금 공제 혜택
 
런던에 비해 상승률이 높지 않은 서울 집값

런던에 비해 상승률이 높지 않은 서울 집값

많은 국가에서 주택 보유는 공격적 과세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장려되고 세금 혜택까지 받는다. 한국에서는 실거래가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며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렸다. 하지만 실거래가에 못 미치는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부분 평가(fractional assessment) 제도는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졌지만, 미국은 심지어 세금 공제까지 해준다. 물론 대출을 쉽게 해주면서 주택 구입을 장려하면 집값 상승 요인이 된다. 그런데도 많은 나라가 높은 집값을 굳이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숨겨진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주거 자본주의(housing capitalism)에는 세계적으로 두 개의 균형점이 있다. 하나는 고세율-저부채-저주택가의 조합이다. 다른 하나는 저세율-고부채-고주택가의 조합이다. 저복지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대출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고 이것은 통화량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가져온다. 특히 주택과 같이 공급이 한정된 자산의 가격이 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오른 주택의 자산 가치는 공적 사회 지출이 낮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적 보험’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복지 지출을 더 늘려달라는 요구는 줄어들게 된다. 낮은 복지 지출이 복지에 대한 수요를 낮추는 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고복지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 인플레이션도 적으며 주택 가격도 적게 오른다. 주택의 자산가치가 별로 없지만, 사람들은 공적 복지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비싼 주택으로 사적 보험을 들어야 할 필요를 별로 못 느낀다. 높은 복지 지출이 복지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사이클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이 두 개의 시스템이 안정적인 균형점이다. 한번 그 사이클에 들어가면 여간해서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조세 부담률은 약 20% 선이다. 아직 조금 낮은 편이지만 계속해서 오르는 중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다. 즉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두 개의 균형점 중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저세율-고부채-고주택가 조합의 전형이었다. 여기에서 주택가를 끌어내리려면 고세율-저부채의 조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저세율-고부채를 그냥 둔 채 주택 가격만 끌어내리려고 하면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 일궈놓은 ‘사적 보험’을 국가가 빼앗아가는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국가가 도와주는 것이 없으니 스스로 노력해서 노후 대책을 만들었는데 국가가 무슨 자격으로 그것조차 빼앗아가느냐는 이유 있는 항변은 그래서 나온다. 쉽게 말해 부동산을 못 하게 할 거면 노후를 책임져 주든가, 책임도 못 질 거면 내 부동산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대처의 집 구매 지원, 국민에 부 이전
 
그럼 한국은 빠른 시간 안에 고세율-저부채 체제로 전환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세계 최고로 빠른 고령화 속도에 납세자 자체가 줄어드는 판에 코로나19로 역대급 추경까지 겹쳤다. 무슨 수로 세금을 더 많이, 더 빨리 올리겠는가. 이 상황에서 제도적 정합성은 생각지 않고 집값만 잡겠다는 것은 정치적 명분을 위해 위험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차라리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정책으로부터 배우라고 권해주고 싶다.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악명 높은 영국에서 대처는 1979년 총리가 되자마자 ‘집을 살 권리(Right to Buy)법’을 통과시켰다. 지자체가 보유한 공공임대 주택을 입주자들에게 할인된 가격에 팔고 대출까지 제공하도록 한 법이었다. 할인율은 최대 70%까지 이르렀고 평균 40% 선이었다. 이 정책은 즉각적인 지지를 얻었고 노동당을 지지하는 서민층의 다수를 보수당 지지로 돌아서게 하였다. 법 통과 후 10년간 공공임대 주택 입주자 3명 중 1명이 집을 살 수 있었다.
 
이 정책의 총책임을 맡았던 마이클 헤젤타인 전 환경부 장관은 자신 있게 이렇게 말했다. “이 정책은 역사상 어떤 정책보다도 더 많은 국부를 국민에게 이전시켜 주었다.” 이 정책에 반대했던 노동당은 18년이 지난 1997년이 돼서야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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