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문 대통령을 벼르는 제왕적 권력의 저주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이 다스리는 정치후진국이다. “3권이 분립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성문 법전(法典)의 대원칙은 반세기 이상 잠들어 있다. 단 한 사람이 나라를 좌지우지한다. 이 어이없는 간극이 주권자에게는 치욕이다.
 
권력의 달콤한 향기에 취한 무리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둘러싸인 21세기 차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레임덕을 눈치채지 못한다. 정적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절대 권력의 칼날은 마침내 주인을 찌르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 어떤 대통령도 이 엄중한 인과(因果)의 법칙을 거역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박정희는 헌법을 멈춰 세워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18년간 독재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오직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는 대통령직(presidency)의 본질만은 잘 이해했다. 마지막까지 대통령다웠다. 간암 투병 중이던 심의환 전 총무처 장관이 1979년 10월 22일 사망하자 사흘 뒤인 25일 그의 아내를 위로하는 친필 편지를 보냈다(문화일보 10월 16일자 보도). “단장(斷腸)의 슬픔과 감회를 금할 수 없다”고 적었다. 김재규의 총에 맞아 절명했던 10·26 하루 전날의 일이다.
 
박정희는 1972년 제3세계 비동맹 외교의 전쟁터인 인도에서 고군분투하는 노신영 뉴델리 총영사에게 여러 차례 친필 편지를 썼다. 훗날 국무총리를 지낸 노신영은 생전에 필자에게 “대통령은 ‘북한의 힘이 세서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달라’고 했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흔적에서 약소국 대통령의 고뇌를 읽고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한국은 열세에도 불구하고 1973년 12월 인도와 남북한 동시 수교에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군에게 사살된 공무원 아들이 보낸 자필 편지에 인쇄물로 답장을 보냈다. “아픈 마음으로 편지를 받았다. 내내 가슴이 저렸다”면서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친형 이래진씨는 “손편지가 아닌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라며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청와대는 “내용이 중요하지 글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관례’임을 강조했다. 박정희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한다면 국민을 위한 전면적인 헌신이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의 본질, 대통령직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국민은 이런 차이를 기가막히게 알아낸다.
 
문재인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으로 다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스쳐 지나간다. 정치의 본질을 오독(誤讀)했다. 정치인은 저 거룩한 곳의 정의와 윤리를 추구하는 성직자가 아니다. 정치는 모순과 혼돈의 흙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온몸을 더럽히는 일이다. 그래서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힘들게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하는 실존적 구원(救援) 행위다.
 
정치인의 무기인 권력은 타인을 내 의도대로 움직이는 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만 용서받는다. 유능한 인재와 손잡고 반대자의 이야기를 필사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유다. 악마와도 거래해야 한다.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은 이런 고행(苦行)을 거부한다. 그러니 정치를 잘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 나라 대통령 권력의 작동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비무장의 국민이 북한군에게 총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졌는데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인쇄물 편지로 위로한다고 분노와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
 
불법과 비리에 연루된 청와대 참모가 셀 수 없을 정도다. 라임 실소유주 김봉현은 문자메시지에서 “민정수석, 정무수석 라인을 타고 있다”고 했다. 진중권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패한 곳은 청와대”라고 개탄했다. 대통령은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듯이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최측근과 친인척의 탈선을 방지하는 특별감찰관을 3년이 넘도록 공석으로 방치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비현실적 임대차법은 전세대란을 불렀다.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피해자가 되자 “홍남기가 홍남기를 잡았다”는 조롱이 나온다. 탈원전 감사를 하고 있는 최재형 감사원장은 “이렇게 저항이 심한 감사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도처에서 난리판이 벌어지고 있다. 뭔가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다산은 인간이 선한 본성만 지키면 만 가지 일이 모두 해결된다는 성리학적 사고를 거부하고 (중략) 행동으로 옮겨야만 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실천철학이다.”( ‘문재인의 서재’ 푸른 영토)
 
무능한 참모와 관료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실정(失政)과 부패가 도를 넘었다. 문 대통령은 추상적 이념의 울타리를 걷어차고 현안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다산의 애민(愛民)을 실천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진영을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 절대권력을 잡았으니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저주라는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