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안찍으면 쫓을 것" 협박 메일…美정보수장 "이란 짓"

존 랫클리프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지난 5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존 랫클리프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지난 5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이란과 러시아가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미 국가정보국(DNI)과 연방수사국(FBI)이 21일(현지시간) 밝혔다. 2016년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한 것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존 랫클리프 DNI 국장과 크리스 레이 FBI 국장은 이날 워싱턴 FBI 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과 러시아 세력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으로 미국 유권자 등록 정보를 입수했으며, 이란은 이 정보를 이용해 유권자에게 협박 이메일을 보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란과 러시아 세력이 현재까지 진행된 투표 결과를 바꾸거나 유권자 등록 명부를 수정한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일은 11월 3일이지만, 주별로 조기 투표와 우편 투표는 이미 시작돼 진행 중이다.
 
최근 플로리다와 알래스카 등 거주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협박성 이메일을 받았다. 협박 이메일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즈' 명의로 발송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1차 TV토론 때 이들을 향해 "물러서서 대기하라"고 말해 유명해진 조직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전날 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미 정보당국이 하루 만에 "이란 소행"이라고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신속하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수신자 이름을 명시한 이메일에는 "우리는 너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 너는 민주당 소속으로 등록돼 있다"고 언급한 뒤 "너는 선거일에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네 뒤를 쫓을 것"이라고 적혀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CNN 등이 보도했다.
 
이메일은 또 "우리는 네가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너라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당적을 공화당으로 바꾸라고 종용했다.
 
지금까지 플로리다와 알래스카, 애리조나, 펜실베이니아 거주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래스카를 뺀 나머지 3개 주는 올해 대선 승부를 결정지을 경합주로 꼽힌다. 협박 이메일은 사우디아라비아 보험회사, 에스토니아의 교과서 회사 웹사이트와 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 서버를 거쳐 발송됐다고 NYT는 전했다.
 
이란과 러시아가 유권자 등록 시스템을 해킹해 유권자 정보를 빼냈는지,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NYT는 전했다. 일부 유권자 정보는 상업적 용도로 공개돼 있다고 한다.
  
랫클리프 국장은 "이란은 명의를 도용해 유권자를 협박하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이 같은 일을 꾸몄다"고 말했다. 외국 세력이 미 유권자 정보로 가짜 정보를 유포해 혼란과 혼동을 일으키고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려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게 투표하라"는 협박이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해를 준다고 평가한 이유에 대해 랫클리프 국장은 추가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지난 8월 미 정보당국은 이란의 미 대선 방해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무도한 이란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행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NBC방송에서 "브리핑받은 바에 따르면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보다는 선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국 발표에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트위터를 통해 "랫클리프의 말을 듣지 말라. 편파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인 랫클리프는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다. 정파성 논란에 지명 닷새 만에 지명이 철회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명을 통해 자리에 앉혔다. 지난 8월 그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의회에 선거 관련 안보 브리핑이나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 정보당국은 중국·러시아·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이 대선을 방해하려고 한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해왔다.
 
한편 이란과 러시아는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22일 NBC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 국영 TV를 통해 “증거가 없는 거짓 주장”이라면서 주이란 스위스 대사를 불러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주 이란 스위스 대사관은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다.  
  
라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가 미 선거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는 모든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