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하고도 꽃뱀 몰려 징역"…뒤늦게 드러난 男 거짓말

거짓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남성을 고소한 혐의(무고)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A씨. 징역 6개월 형기를 마치고 나온 A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8일 A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무고 상대방인 B씨의 법정 진술이 거짓이라는 법원 판단을 근거로 재심해달라며 19일 대법원에 항고했다.
 

"억울함 풀고 싶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A씨의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한 즉시항고 사건을 심리 중이다. A씨는 “재심을 통해 내가 ‘꽃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저 억울함을 풀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사건은 3년 전 20대 초반 사회초년생이었던 A씨가 “술에 취해 기억이 없는 상황에서 성관계가 있었다”며 B씨를 고소하며 시작됐다.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편집한 녹음파일

한 시중은행 신입사원이었던 A씨는 2017년 5월 회사 상사인 B씨와 술을 마셨다. 그날 밤 호텔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A씨는 B씨를 준강간 혐의로 고소했다. 준강간은 만취 상태 등 항거불능을 이용해 간음할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B씨가 경찰에 제출한 녹음파일이 무혐의로 판단한 근거였다. 
 
B씨는 성관계 도중 휴대전화 녹음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놨다. 해당 녹음파일엔 A씨가 대화가 가능했고 “계속 하자”고 말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A씨는 녹음파일을 근거로 ‘꽃뱀’으로 몰렸다. 오히려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1심 재판 과정에서 B씨가 녹음파일 일부를 편집한 사실이 드러났다. 원본 파일을 들어보면 A씨는 당시 남자친구 이름과 남자친구를 부르던 '오빠' 호칭을 여러 차례 부른다. A씨가 B씨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모두 B씨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파일에서 삭제한 부분이다.
 

1심 무죄→2심 징역 6월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A씨가 술과 잠에 취한 상태에서 남자친구로 착각해 성관계에 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B씨는 A씨가 간간이 남자친구 이름을 부르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고소를 당하자 녹음파일을 제출하면서 일정 부분을 고의로 삭제해 제출했다”고 판단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 뉴스1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법. 뉴스1

그러나 2심은 지난해 2월 1심을 깨고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남자친구 이름을 부른 것은 습관적으로 나온 말일 뿐 B씨를 남자친구로 여기고 한 말은 아니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남자친구에게 호텔 방을 미리 알린 적도 없어 상대방을 착각했다는 말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 누군가 몸을 만져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부르며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고 진술했다. 1심은 이 진술을 결정적으로 봤다. 당시 A씨는 녹음파일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증거와 일치하는 진술을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술에 취했다고 하면서 이름을 불렀다는 세부 사실을 기억한다는 게 상당히 이례적이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출소하고서야 인정된 B씨 위증

A씨가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인 지난해 10월 B씨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B씨의 위증이 인정됐다. 판결문엔 “B씨가 재판에서 ‘음질 수정 목적으로 파일에 손을 댔다. 일부러 누락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지만, B씨가 음성파일 제출 전 남자친구를 부르는 부분과 A씨를 수차례 불러도 A씨가 만취해 전혀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사실이 있다”고 적혔다.

 재심청구서(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재심청구서(기사와 관련 없음). 뉴스1

형사소송법 420조에 따르면 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이 확정판결로 허위로 증명될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해당 증언과 유죄 인정이 직접 관련 있지 않더라도 허위 증언이 인정되면 재심 사유가 있다고 본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