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대혼란···일선 병원 "본인이 책임지겠다면 놔드려요"

23일 오후 서울의 한 병원에 독감 예방접종 일시중단 안내문이 걸려있다. 뉴스1

23일 오후 서울의 한 병원에 독감 예방접종 일시중단 안내문이 걸려있다. 뉴스1

“본인이 (결과를) 다 책임진다고 할 때만 (독감 백신을) 놔드립니다. 요새 말이 많아서 권장하진 않아요.”
 
23일 낮 12시 30분 경기도 성남시의 한 내과. 독감 백신을 접종할 수 있냐고 묻자 이 내과 관계자는 이렇게 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당 내과는 지난주만 해도 독감 백신을 맞으려는 이들로 붐볐다. 하지만 이날은 대기 인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이 관계자는 “오늘 꼭 맞아야 한다는 분에게만 접종하고 있다”며 “사망 보고가 잇따르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다음에 오라고 안내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빨리 교통정리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병원·지자체 지침 '엇박자' 

23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동부병원 독감 예방접종실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23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동부병원 독감 예방접종실 앞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최근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숨진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하자 일선 병원이나 시민이 접종 여부를 놓고 혼란에 빠졌다. 접종을 이어간다는 정부 방침과 달리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백신 접종 1주일 연기를 권고하는 등 정부와 의료계 목소리가 엇갈려서다. 
 
의협 권고나 병원장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백신 접종을 중단한 병원도 있다. 대전 동구 근화내과는 이날 독감백신 접종을 잠정 중단했다. 이 병원 김근화 원장은 “백신 접종 뒤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종을 계속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의협 권고에 따라 접종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가 아무 지침을 주지 않아 백신 접종을 계속하겠다”는 곳도 있다. 대전 서구 A내과는 “정부 지침이 따로 없어 백신 접종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구의 또 다른 내과도 “유·무료 백신이 아직 남아있는데 의협 권고와 상관없이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질병청 판단과 달리 지자체 차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일시 보류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전날 서울 영등포구보건소에 이어 경북 포항시는 이날 독감 백신 안전성을 확보할 때까지 유·무료 독감 예방접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불안한 시민들  

22일 경기 수원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시민들게 접종할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22일 경기 수원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시민들게 접종할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시민도 접종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백신 접종과 사망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막상 맞기 꺼림칙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사망자가 나온 지역에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성남에 사는 30대 임신부 A씨는 “추워지기 전 맞는 게 좋다고 해서 독감 백신을 맞으려고 했지만, 어제 성남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들었다”며 “임신부가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자인 만큼 안전성에 대한 답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당분간 주사를 맞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 병원과 보건소에는 백신을 맞아도 될지 문의하는 전화가 잇따랐다. 성남의 한 병원 관계자는 “백신 종류를 물으며 안전하냐고 묻는 전화가 늘었다”고 말했다. 지역 인터넷 맘카페에는 “나이 많은 부모님에게 독감 백신을 맞으라고 할지 고민된다” “일단 백신 접종 예약을 취소했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전국 36명으로 집계됐다. 질병청은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사망자 36명에 대해 “백신 예방접종과 사망 간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단순 신고 통계”라고 밝혔다. 독감 백신 접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질병청은 이날 전문가 대책 회의를 개최한다. 회의에서는 독감 접종과 사망 원인과 관련성, 국가 백신 접종 사업 유지 여부 등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다. 질병청은 회의 결과를 오후 7시 이후 발표할 예정이다. 

 
채혜선 기자, 대전=김방현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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