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흑염소 농장 주인이 400개 돌탑을 쌓은 까닭

기자
김성주 사진 김성주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81)

 
몇 년 전부터인가 차 박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차에서 자는 것인데, 자동차를 이용한 캠핑의 한 방법이다. 굳이 좋은 텐트를 놔두고 차 안에서 자는지 이해를 못 했으나 한번 쫓아가서 자 보니 그런대로 재미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젠 나도 늙었나 보다. 젊은 캠핑족이 돈과 장비가 없어서 차박을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름대로 낭만이 있어서 즐긴다.
 
몇 년 전부터인가 차박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차에서 자는 것인데, 자동차를 이용한 캠핑의 한 방법이다.[사진 기아차]

몇 년 전부터인가 차박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차에서 자는 것인데, 자동차를 이용한 캠핑의 한 방법이다.[사진 기아차]

 
차 박의 명소가 전국에 여러 곳 있는데 그중 손꼽는 곳이 강원도 평창의 육백 마지기다. 산 정상에 면적이 육백 마지기에 이를 정도로 넓고 평평한 고원이 형성돼 있어 이름이 육백 마지기란다. 몇 해 전에 정상에 오르는 아스팔트 도로가 뚫려 누구나 쉽게 오르게 되자 소문을 타고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바람 불어 시원한 정상에 풍력발전기가 돌고 푸른 잔디와 꽃밭이 이어지니 사진 찍기 좋은 명소가 되었다. 영화 세트장으로 사용한 듯한 3평 남짓 교회당이 육백 마지기 아래에 걸려 있어 가 볼 만하다. 평창군 미탄면 주민들은 전국적인 명소가 된 것이 고맙기만 하다. 덕분에 미탄면에 여행객이 북적거리고 가게가 잘 되니 말이다.
 
육백 마지기보다 크기는 작지만, 더 좋은 곳이 있다고 해 간 곳이 육십 마지기다. 육백 마지기에서 내려와 다시 옆 산길로 오르니 널따란 흑염소 농장이 나온다. 젊은 농장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하고는 승용차에서 내려 힘 좋은 트럭으로 갈아타라고 한다. 옮겨 탄 트럭은 바로 정상으로 꼬불꼬불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롤러코스터처럼 재미있다. 다시 정상에 오르니 미탄면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육백 마지기처럼 평평한 산 정상에 푸른 초원이 형성돼 있고 소나무 하나가 고즈넉이 서 있으니 그림이다. 이곳에도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많이 온단다. 원래 이 산은 농장에서 키우는 흑염소들이 풀을 먹는 장소란다. 흑염소들이 맛있는 풀과 꽃을 다 뜯어 먹으니 저절로 풀밭만 남아서 육십 마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육십 마지기는 농장에 찾아온 손님들이 지어 준 별명이란다. 정상 아래에 있는 흑염소 농장에는 운동장 크기의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텐트를 치고 놀다 간다. 흑염소 갈비 세트를 주문해서 구워 먹기도 한다. 
 
"갑자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아버지가 돌을 쌓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돌을 쌓았죠. 아버지가 다른 건 안 시키고 돌 쌓는 것만 시키는 거예요" [사진 김성주]

"갑자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아버지가 돌을 쌓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돌을 쌓았죠. 아버지가 다른 건 안 시키고 돌 쌓는 것만 시키는 거예요" [사진 김성주]

 
흑염소 농장의 주인은 의외로 젊었다. 30대 형제가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부모는 예전부터 이곳에서 흑염소를 길러 왔고, 도시로 공부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온 형제가 농장을 이어받아 흑염소 가공식품을 만들고 흑염소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6차산업을 부자가 분업해 일구고 있는 셈이다. 괜찮은 구조다. 사육에 노하우가 있는 아버지가 흑염소 관리를 하고 아들들이 2차 가공과 3차 판매 서비스를 나누어 하니 말이다. 아들 둘은  SNS에도 능해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
 
청년 농의 모범 사례라고 보여 칭찬을 해주었더니 고맙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내 한숨을 쉰다. 나더러 주변을 돌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 봤더니 희한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돌탑 수백개가 농장 입구부터 산 정상까지 있었다. 산 정상에 오른다는 마음에 주변을 보지 않아 몰랐다. 진안 마이산 입구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수십 개가 아니다. 400개에 가깝다. 그런데 돌탑이 서 있는 위치나 모양이 아무 맥락이 없다. 흑염소와 돌탑이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돌탑이 서 있다. 그래도 멋있다. 워낙 돌탑이 많으니 세어 보는 것도 재미있고 사진을 찍으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나온다.
 
주인에게 돌탑을 왜 쌓았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모른다고? 왜 모르냐고 물으니 시키니까 한 거란다. 아버지가 시켜서 10년을 넘게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너무나 사연이 궁금해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들어 봤다.
 
“아버지는 이 자리에서 흑염소만 계속 키워 왔어요. 저희도 그런가 보다 하고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도 가고 평창을 떠나 서울로도 갔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아버지가 돌을 쌓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돌을 쌓았죠. 아버지가 다른 건 안 시키고 돌 쌓는 것만 시키는 거예요. 시간 나는 대로 쌓자고 해서 쌓았어요. 아버지가 혼자 돌탑을 쌓고 있는데 가만있을 수도 없고 말이죠. 그게 지금 10년이 넘어가네요.”
 
두 형제는 돌탑이 정말 싫었단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단다. 그래서 가출을 하기도 했단다.

두 형제는 돌탑이 정말 싫었단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단다. 그래서 가출을 하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농장을 키워 나가면서 진입로를 넓히다 보니 산에서 암석이 잔뜩 나와 무엇에 쓸까 하다가 돌탑이 생각나서 쌓기 시작했단다. 그것도 아들들의 추정이다. 이유를 이야기 안 하고 쌓자고 해 아직 이유를 모른단다. 포크레인으로 큰 돌을 옮겨 자리를 잡으면 손으로 작은 돌을 그 위로 쌓는 게 방법이란다. 처음에는 돌들이 균형이 안 맞아 자꾸 무너졌단다. 게다가 돌탑을 겨우 2m 넘는 높이로 쌓아도 흑염소들이 돌탑을 기어 올라가서 무너뜨린단다. 균형이 맞으면 무너지지 않지만, 균형이 어긋나면 흑염소 무게에도 무너진단다. 고생고생해 쌓아 놓은 돌탑을 무너뜨리는 흑염소가 미웠단다. 돌탑 쌓는 방법을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니 무너진 돌탑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시는 거예요. 스무살이 넘어 군대도 다녀 왔는데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니 놀랐어요.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족끼리 가자고 하니까 아버지가 자상해지셨나 싶어 내심 좋았어요.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 말을 안 해주시는 거예요. 목적지가 어딘지는 저희도 가서 알았어요.”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차를 운전해 여행을 갔다. 행선지는 진안 마이산과 하동 삼성궁이었다. 이 두 곳은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돌탑으로 제일 유명한 곳이다. 아버지는 돌탑을 보여 주러 간 것이다. 그곳에 가서 아버지는 짧게 말하였다. “이렇게 쌓아라.”
 
두 형제는 돌탑이 정말 싫었단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단다. 그래서 가출을 하기도 했단다. 가출해 봐야 평창 산골에서 갈 데가 없으니 친구 집에서 놀다가 며칠 만에 돌아갔단다.

 
강원도 산골 흑염소 농장에 돌탑이 400여개가 있다면 믿겠는가. 돌탑을 보러 산을 보러 사람들이 온단다.

강원도 산골 흑염소 농장에 돌탑이 400여개가 있다면 믿겠는가. 돌탑을 보러 산을 보러 사람들이 온단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사연을 들으면서 내내 웃었다. 이유를 모르고 십년을 넘게 돌탑만 쌓았다니 말이다. 지금은 그 돌탑들이 명소가 되었다. 강원도 산골 흑염소 농장에 돌탑이 400여개가 있다면 믿겠는가. 돌탑을 보러 산을 보러 사람들이 온단다. 그리고 흑염소를 찾으니 너무나 고맙단다. 그것도 젊은 계층이 흑염소를 찾고, 잘 팔리지 않던 갈비 세트가 캠핑 음식으로 팔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사이에 결혼도 한 형제는 흑염소 농장을 알차게 꾸려 나가고 있다. 
 
흑염소 산업은 소와 돼지, 닭과 같은 축산업과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 돼지, 닭은 늘 일상에서 먹는 음식으로 자리잡혀 있어서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지만 흑염소는 일반 식재료와 다른 보양식품으로 인식돼 어쩌다 먹는 음식이고 시니어 계층만 찾는 식품이다. 비슷한 것으로 사슴이 있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가 돼 흑염소를 많이  찾을 것 같지만, 소와 돼지에 비해 몸집이 작아 고기가 많이 나오지를 않으니 수익성이 낮다. 마음이 젊고 체력도 좋은 신중년층은  흑염소탕과 같은 보양식을 찾지 않는다. 고객층이 줄어 사육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량이 적은 흑염소 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캠핑족 사이에서 흑염소 고기를 특별식으로 찾아서 수요가 늘고 있다니 눈여겨보아야 한다. 흑염소와 비교되는 것이 양인데, 양고기꼬치와 양 갈비가 유행하면서 양고기 수요가 폭발했다. 대부분의 양고기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양이 대중화한 사례가 있으니 흑염소 시장이 다음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미탄면의 돌탑이 있는 흑염소 목장은 고객이 농장을 직접 방문해 사육 현장을 보고 구매를 하는 형태이니 체험 마케팅을 제대로 하고 있다. 흑염소 사업은 소규모로 운영돼 브랜드가 잘 구축되지 않는다. 고객은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 위생 관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마련이므로 직접 현장을 보여 주는 것은 필요한 것이나 어려운 일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좋은 자연환경과 돌탑을 가지고 마케팅을 하고 시장 개척을 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농장을 돌탑을 10년간 쌓아서 남다른 농장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좋은 자연환경과 돌탑을 가지고 마케팅을 하고 시장 개척을 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농장을 돌탑을 10년간 쌓아서 남다른 농장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농촌 관광 형태로 흑염소 농장을 운영하는 것은 전남 완도의 약산도 흑염소 단지 정도만 가능하다. 약산도 흑염소는 완도의 특산물로 지정돼 지자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좋은 자연환경과 돌탑을 가지고 마케팅을 하고 시장 개척을 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농장을 돌탑을 10년간 쌓아서 남다른 농장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농장의 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었으리라.

 
얼마 전 ‘갬성캠핑’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흑염소 농장에서 촬영한다고 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고 싶어 먼 길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잠시 촬영 장소를 옮긴 탓에 그들을 못 봤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언덕에 서 있었더니 마침 흑염소 농장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초면인지라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돌탑을 쌓게 된 계기를 여쭈었다. 대답은 간결했다. “그냥요” 
 
그래 사업은 그냥 하는 거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언제 사업을 하겠는가.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거지. 
 
슬로우 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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