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YS때 "정치는 4류" MB땐 "경제 낙제는 아니다"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재계 최고의 거물이었던 만큼 정치권과도 애증의 관계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청와대에서 이건희 신임 IOC위원(삼성회장)의 예방을 받고 오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있다. [중앙포토]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청와대에서 이건희 신임 IOC위원(삼성회장)의 예방을 받고 오찬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있다. [중앙포토]

 
김영삼(YS) 정부 시절 있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1995년 4월 베이징에서 “행정력은 3류급, 정치력은 4류급, 기업경쟁력은 2류급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특파원들과의 오찬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정부는 행정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정권 들어서고 나서도 크게 완화된 게 없다. 자동차 허가도 부산시민이 반발하니까 내준 것뿐”이라며 직설 화법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이 회장 발언에 청와대는 물론 당시 정치권도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해명에 나섰다. “정치력·행정력·기업경쟁력이라고 했지 정치인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규제 관련 발언도) 주의를 환기하겠다는 차원에서 한 이야기”라는 설명이었다.  
 
이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100억 원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받았다. 하지만 YS는 임기 마지막 해인 이듬해(1997년) 이 회장을 사면 복권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청와대에서 이건희 삼성회장과 간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대중 대통령이 2001년 청와대에서 이건희 삼성회장과 간담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치권을 향해 돌출발언만 한 건 아니었다. 이 회장은 YS의 후임인 김대중(DJ) 전 대통령과는 여러 차례 독대하며 현안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DJ의 최측근이었던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희호 여사 별세 당시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이건희 회장과 재임 시 상당히 많이 대화를 나눴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IT 기반을 닦았으니 20~30년 먹고살건 있지만, 이후에 국민이 먹고살 게 없다. 정부에서 개발에 박차를 가해달라’고 해서 DJ 정부가 과학기술 부분과 정보통신부를 강화하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때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힘을 보탰다. MB는 당시 “평창이 반드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강력한 청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1년 7월 7일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확정 후 이건희 IOC 위원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7월 7일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확정 후 이건희 IOC 위원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2년 뒤인 2011년 3월, 이 회장은 MB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것과 관련, 전경련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MB정부 경제 성적표에 대해서도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에서는 “청와대내 분위기가 좋지 않다. 듣기 거북하지 않겠느냐”(고위관계자)는 반응이 나왔다.

 
정치인 중에 개인적 인연이 부각된 건 서울사대부고 동창으로 지난 6월 별세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이다. 홍 부의장은 생전 중앙일보에 “이 회장이 말수는 적었지만, 승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 ‘싸움닭’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영익·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