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라임사태, 금감원 무사안일 감독 탓" KB증권 문건

KB증권이 라임사태의 근본 원인을 ‘금융감독원의 감독·대응·수습 실패’라고 설명하는 탄원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이 예고한 중징계 조치의 타당성과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한 문건이다. 
사진은 KB증권 사옥 전경. KB증권

사진은 KB증권 사옥 전경. KB증권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최근 라임사태의 책임을 금감원에 돌리는 내용의 탄원 문건을 작성했다. 본지가 확보한 이 문건은 첫 문장부터 라임사태에 대해 "근본적으로는 금융당국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정책실패와 금융감독원의 무사안일한 감독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금감원의 구체적인 잘못을 열거한다.
 

"감독 강화 실패로 사모펀드 부실화 초래" 

KB증권은 금감원의 첫번째 귀책이 '감독강화 실패'에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위원회가 2015년 10월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 정책을 통해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고, 2018년 3월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부실기업 메자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 사채 등)으로의 자금유입 길을 열어줬는데 금감원이 그에 따른 감독 강화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KB증권이 작성한 탄원문건 일부. 정용환 기자

KB증권이 작성한 탄원문건 일부. 정용환 기자

 
문건에는 "통상 금융시장에서 규제완화가 이뤄지는 경우 그에 맞춰 금감원의 감독이 강화돼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금감원은 특별한 감독 강화 없이 사모펀드의 운용에 대해 소극적으로 감독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는 (중략) 사모펀드 시장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부실징후 안일 대응, 라임사태 야기" 

KB증권은 지난해 10월 라임사태 발발에 앞서 금감원이 라임운용의 부실 가능성을 이미 알았으면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금감원이 2018년 3월 코스닥 상장사 파티게임즈 상장폐지 관련 라임운용 펀드 거래에 대한 제보를 받았으면서도 다른 검사업무 등을 이유로 해당 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지난해 7월 라임운용이 펀드 수익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즉각 검사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문건에는 "금감원은 검사를 통해 사전에 라임운용 펀드 부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환매중단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펀드 판매사 또는 총수익스와프(TRS) 증권사들에 대해 내용 공유 또는 사전조치 등을 요청할 수 있었음에도 이런 노력 없이 사안을 방치했다"며 "결국 검사가 진행 중이던 2019년 10월 총 1조5000억원가량의 라임사태가 발생했다"고 썼다.
 

"라임사태 수습도 실패…책임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KB증권은 또 금감원이 라임사태 이후에도 펀드 운용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투자자와 금융기관의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지난해 10월 중순 KB증권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사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라임 사태를 명확하게 정리하지도 못한채 언론에는 판매사 또는 TRS증권사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의견을 밝혀 국민들이 금융기관을 불신하도록 조장했다고도 했다.
 
라임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금감원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청와대에 파견 중이던 현직 간부가 검사 담당자로부터 검사 예정 내용이 담긴 내부보고서를 입수해 이를 라임운용 임원에게 제공한 점 ▶지난 1월 라임운용 펀드에서 스타모빌리티로 200억원이 유출돼 횡령에 사용되는 것을 방치한 점에 금감원의 책임이 있다고 썼다.
 

"금감원 제재, 타당·형평성 재고해달라" 

문건의 결론은 KB증권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 조치를 제고해달라는 것이다. 라임 사태의 책임이 금감원에도 있으니, 금감원이 판매사이자 TRS증권사인 KB증권에 제재를 내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논리다. 금감원은 최근 KB증권이 내부통제 기준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박정림 대표와 관련 임원들에 대한 '직무정지' 등 중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관련 징계 조치는 오는 29일 제재심의위원회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KB증권이 작성한 탄원 문건. 정용환 기자

KB증권이 작성한 탄원 문건. 정용환 기자

 
KB증권은 문건에서 "금감원은 검사 담당 임직원에 대한 조치나 반성도 없이 금융기관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특히 당사의 경우 다른 금융기관과는 달리 라임 사태와 관련해 임직원이 형사상 구속기소된 바가 전혀 없음에도 타 기관과 동일한 정도로 제재조치를 예정하는 등 과도한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라며 억울한 심정을 내비쳤다.
 
이어 "부디 이런 점을 고려해 당사 및 당사 임직원에 대한 제재조치의 타당성 및 형평성을 재고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면서 문건을 마무리지었다. 이 탄원 성격으로 작성된 문건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내용을 감안할 때 금감원 외부에서 금감원 제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재계 인물을 겨냥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딜레마 빠진 KB증권…외부서 해법 찾아"

문건을 작성한 곳은 KB증권 내 라임 사태 태스크포스(TF)팀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초 발족한 TF는 회사 내 리스크관리부와 법무부가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TF는 매주 박정림 사장과 정모 리스크관리본부장(CRO)·신모 세일즈앤트레이딩부문장(부사장) 등에 직접 보고를 한다.
 
KB증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금감원으로부터 임원 중징계안을 통보받은 KB증권은 '임원은 형식적인 결재권자에 불과했다'고 주장하자니 직무 유기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내부통제 기준이 허술했다'고 주장하자니 중징계를 피할 명분이 없어져 딜레마에 빠졌다"며 "금감원의 감독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은 외부에서 해법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건에 대해 KB증권 측은 "라임사태 관련 제재심을 앞두고 사안별로 사실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자료 중 일부로, 부문장이나 대표이사에게 보고된 자료도 아닐뿐더러 대외에 제출된 적도 없는 자료"라며 "회사의 공식적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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