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43번 강조한 文, 북한 총격 쏙 뺀 채 "서해 국민 사망"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내년도 예산안 설명을 위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 "이제는 방역에서 확실한 안정과 함께 경제에서 확실한 반등을 이뤄야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2017년 취임 이후 다섯번째(본예산 4차례, 추경 1차례)다.
 
국정 운영 기조를 담은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만 2000자에 달하는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의 키워드는 경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역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말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방역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말했다 뉴스1

◇또 내놓은 확장 재정

  
 문 대통령은 연설의 절반 가까이 할애해 코로나 방역과 경제 회복의 성과를 소개했다. 그런 뒤 “국민의 삶을 지키고 국가의 미래를 열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며 “내년도 예산은 국난극복과 선도국가로 가기 위한 의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요청한 내년 예산은 555조 8000억원이다. 본예산만 비교하면 올해(512조 3000억원)보다 8.5% 늘어난 ‘초(超) 슈퍼 예산’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올해) 추경까지 포함하면 0.2% 늘어난 것”이라며 확대 폭이 크지 않음을 강조했다. “중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함께 고려했다”면서다. 그러면서 “뼈를 깎는 지출구조조정을 병행해 재정 건전성을 지켜나가는 노력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예산을 대폭 늘린 배경에 대해선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에 최우선을 두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라진 소득주도성장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경제로 43번 등장했다. 2년전 29번, 지난해 27번보다 크게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며 여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며 여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년전엔 포용(18번), 지난해에는 공정(27번)이란 단어를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이번 연설에선 포용은 1번, 공정은 2번에 그쳤다. 취임 이후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였던 소득주도성장도 이날 연설에선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제 경제에서 확실한 반등을 이뤄야 할 시간”이라며 “방역과 경제의 동반 성공, 두 마리 토끼를 기필코 잡아낼 것을 함께 다짐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께 반드시 보답하겠다. 확실한 경기 반등을 이루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코로나와 방역 강조

 
연설에선 ‘코로나’가 25번 등장하면서 위기(28번)와 방역(23번)도 자주 언급됐다. 
 
문 대통령은 “인류는 100년만의 보건위기를 맞았다”며 “경제활동의 근간이 무너지며 세계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대공황 이후 인류가 직면한 최악의 경제 위기”라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이를 기회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시대는 오히려 선도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근거로 OECD가 1위로 평가한 디지털 정부 평가, IMD가 8위로 발표한 디지털 경쟁력 지수 등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대전환”을 목표로 제시하며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봐야 한다. 한국판 뉴딜을 힘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하반기 핵심과제인 뉴딜 사업에는 총 160조원이 투입된다. 
 
이날 원고는 문 대통령이 전날까지 여러번 직접 수정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시정 연설은 한마디로 경제 연설”이라며 “다만 기존의 기조를 폐기했다기보다 문 대통령이 현재를 경제성장의 기회로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난 처방은 '임대차 3법 조기 안착'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며 전세난 해결에 방점을 찍었다. 8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주택문제가 당면한 최고의 민생과제다.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매매시장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달라진 기류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임대차 3법을 조기에 안착시키고 질 좋은 중형 공공임대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전세난의 원인으로 임대차3법의 부작용을 지목한 야당 주장을 사실상 반박한 것이다.
 
부동산 매매시장과 관련해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주택공급 확대를 차질없이 추진하며 신혼부부와 청년의 주거 복지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23차례 부동산 대책을 통해 지속된 기존 정부 입장을 원론적 수준에서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추미애 충돌 언급 안해

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개혁이란 국민의 여망이 담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범 지연도 이제 끝내주시기 바란다”며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입법만 남은 검찰개혁이 완수됐다면 최근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청와대 관계자)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감사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감사 발표로 촉발된 탈(脫)원전 정책 논란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단지 문 대통령은 “에너지전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여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최근 서해에서의 우리 국민 사망으로 국민의 걱정이 크실 것이다. 사실을 밝히고 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총격에 의한 공무원 사망 사건을, 주체를 빼고 객체를 뭉뚱그린 채 '서해 국민 사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어 문 대통령은 "평화체제의 절실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안보장관회의에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한달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실체적 진실의 규명보다는 평화체제를 강조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후 피켓을 든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를 지나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후 피켓을 든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를 지나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미사여구만 가득" 야당 비판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야당은 비판을 쏟아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정 전반에 대한 솔직한 실패를 인정하고 국회에서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미사여구만 가득한 연설이었다”고 총평했다.
 
현안별 비판도 쏟아졌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임대차 3법을 조기 안착시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국민은 이 지독한 오만, 무능, 독선에 숨이 턱 막혔을 것"(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공수처의 빠른 설치를 당부한 대목과 관련해선 "힘으로 밀어붙여서라도 독재정권 연장을 위한 위헌적 제도를 완성하라는 지휘"(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해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해수부 공무원은 그냥 '사망'한 게 아니라 북한군에 총살됐다. 말을 똑바로 하셔야 한다"며 "평화 체제의 절실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대통령다운 대통령의 부재를 국민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한영익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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