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전 1조5000억 폭증···신용대출, 당장 내일부터 막힌다

새 신용대출 규제 시행(30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시장의 혼란이 여전하다. 시행 전에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려 신용대출이 급증하고, 마이너스 통장 발급도 2배로 늘었다. 연간 대출 목표를 초과할 우려가 커지자 시중은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엄격한 심사 기준을 도입해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정부가 신용대출 용도까지 간섭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과 왜 부실 위험이 낮은 고소득자의 대출을 억제하느냐는 반응까지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새 신용대출 규제 시행을 앞두고 은행들이 본격적인 대출 조이기에 나서고 있다. 셔터스톡

새 신용대출 규제 시행을 앞두고 은행들이 본격적인 대출 조이기에 나서고 있다. 셔터스톡

19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31조354억원이다. 신용대출 규제 발표 전날(12일)과 비교하면 불과 7일 만에 약 1조5300억원 불어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1억원 넘는 신용대출을 받은 뒤, 1년 내 규제지역에서 주택을 사는 경우 대출을 회수하는 방안 등을 담은 새 신용대출 규제를 내놨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을 고소득자의 고액 신용대출(1억원 초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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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DSR을 활용해 신용대출을 조이겠다고 나서자 예상대로 시행 전 대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 개설도 2배 가까이 늘었다. 5대 은행의 신규 마이너스 통장 개설 수는 12일 1931개에서 18일 4082개로 뛰었다. 새 규제가 시행되면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도 신용대출 총액에 합산되기 때문에 미리 받아두려는 사람이 몰렸다.
 
시중은행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KB국민은행은 23일부터 신용대출 심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신용대출이 1억원 초과면 차주(대출자)의 소득과 무관하게 ‘DSR 40% 이내’ 규제를 적용한다. DSR은 차주가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소득 능력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가계대출(주택·신용대출 등)로 연간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DSR이 40%면 소득이 1억원일 때 연간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4000만원 이내여야 한다.
일주일 새 1조5000억 증가한 신용대출.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일주일 새 1조5000억 증가한 신용대출.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금융위는 1억원 초과 신용대출 때 DSR 40% 규제를 연 소득 80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만 적용할 계획이다. 그런데 KB국민은행은 더 강하게 적용해 1억원 이상이면 무조건 DSR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과도한 신용대출을 억제한다는 취지에서 23일부터 연 소득의 200% 안에서만 신용대출을 내준다는 방침도 세웠다.
 
우리은행은 새 규제 조기 시행을 저울질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관련 전산 시스템 개발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일정을 단축해 빨리 시행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내부 공문도 이미 배포된 상태”라고 밝혔다. NH농협은행 역시 대출 한도와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신용대출 억제에 나섰다.
마이너스통장 개설도 확 늘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마이너스통장 개설도 확 늘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시중은행의 이 같은 움직임은 연말까지 올해 대출 총량 목표를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마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총량 계획을 세워 당국에 제출하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목표를 많이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자체적으로 조절에 나선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출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출은 필요할 때 받아야 하는데 미리 받아두게 만드는 이상한 규제란 반응이 많다. 직장인 이재준(38) 씨는 지난주 9000만원가량 신용대출을 받아뒀다. 내년쯤 집을 살 계획인데 그땐 신용대출을 활용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길 듣고서다. 이씨는 “주택담보대출이 적게 나와 신용대출로 메우는 건데 대출을 미리 받은 셈이니 속상하다”며 “투기가 아니고 실제 집이 필요해서 사는 데 이렇게까지 막는 건 심하다”고 말했다.  
 
고소득·고신용자의 대출을 제한하는 게 금융시장 논리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통상 신용도가 높고 상환능력이 큰 차주가 대출을 더 많이 받는다. 고소득자 대출로 부실이 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규제를 적용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서는 차주 단위의 DSR 적용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다만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빡빡하게 적용하기는 어려우므로 한 발짝씩 시행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검토 결과 고소득자의 고액 신용대출부터 적용하는 방안이 그나마 부작용이 적었다는 설명이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앞. 연합뉴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앞. 연합뉴스

어쨌든 규제가 시행되면 소득이 적은 사람의 신용대출 한도가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신용등급을 잘 관리한 사람이 도리어 차별을 받는 셈”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고신용자에게 대출을 많이 내줘야 건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신용자 대출은 규제하고, 부실 우려가 큰 소상공인 대출을 내주다 보면 부실 위험이 커진다”며 “그 비용이 금리인상 등의 형태로 다른 고객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의 판단엔 고소득자의 신용대출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깔렸다. 그런데 정말 고소득·고신용자가 받은 신용대출이 주택시장으로 흘러가 가격 불안정으로 이어졌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계층의 늘어난 신용대출이 주택시장으로 언제 얼마나 흘러갔는지 검증이 있었는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