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영의 일본 속으로]'니쥬'의 성공…"한·일 전략적 손 잡으면 세계서 통한다"

22일 일본 도쿄 시부야 중심부에 있는 시부야109 외벽에 니쥬(NiziU)의 대형 사진이 걸렸다. 윤설영 특파원.

22일 일본 도쿄 시부야 중심부에 있는 시부야109 외벽에 니쥬(NiziU)의 대형 사진이 걸렸다. 윤설영 특파원.

 
22일 젊은이들의 거리인 도쿄 시부야(渋谷) 중심에 있는 ‘시부야109’타워에 JYP 걸그룹 니쥬(NiziU)의 대형 광고판이 등장했다. 전광판에선 다음 달 2일 발매되는 니쥬의 첫 앨범 ‘Sweet bomb’의 광고 영상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니쥬와 관련된 상품을 파는 팝업스토어는 9일 전부터 입장권 1차 예약판매가 시작됐는데 수만 명의 팬들이 몰려 일찌감치 마감됐다.

 
니쥬는 12월 31일 방송되는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한다. 한 해 동안 가장 인기가 있고 화제가 된 가수들만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 아직 정식 데뷔를 하지도 않은 니쥬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반면 12년 연속 홍백가합전에 출연해왔던 토종 일본 걸그룹 AKB는 올해 명단에서 제외돼, 일본 가요계의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음악 팬들 사이에선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라는 말이 나왔다.
 
니쥬는 한국의 기획사 JYP 엔터테인먼트와 일본의 레코드 회사 소니뮤직이 공동으로 진행한 글로벌 오디션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멤버 9명 모두가 일본인(1명은 미국 이중국적)으로, 처음부터 일본 시장을 통한 세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22일 도쿄 시부야에 있는 시부야109에 설치된 니쥬의 팝업스토어에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22일 도쿄 시부야에 있는 시부야109에 설치된 니쥬의 팝업스토어에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해 7월부터 일본 8개 도시와 미국 하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글로벌 오디션을 진행해 1만명 넘는 지원자가 참가했다. 이들의 오디션 과정은 유튜브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인 후루(Hulu), 지상파 니혼TV를 통해 공개됐다.
 
새로운 회차가 공개될 때마다 오디션 참가자의 이름이 야후 재팬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가 하면, ‘진실, 성실, 겸손’을 강조하는 프로듀서 박진영의 발언은 ‘명언집’으로 공유되기도 했다.
 
6월 30일 발매된 니쥬의 프리 데뷔 앨범 ‘Make you happy’는 오리콘 차트 등 일본의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쓴 건 물론이고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차트 상위를 차지했다.
 
황선혜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일본센터장은 “한국에서 이미 검증된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포맷, JYP의 트레이닝과 프로듀싱 능력, 일본 소니뮤직의 현지 파워, 박진영 개인의 캐릭터 등 여러 강점 요소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각자 잘하는 부분을 전략적으로 협업한 것이 세계에서 통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니쥬의 성공 형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새롭다. 2000년대 가수 보아가 일본 에이벡스뮤직을 통해 일본 현지화에 성공한 사례였다면, 2010년을 전후로 카라, 소녀시대, 동방신기 등 한국 가수가 일본으로 수출돼 K-pop 장르를 알렸다.
 
22일 일본 도쿄 시부야 중심가에 있는 시부야109에서 걸그룹 니쥬의 대형광고판을 배경으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22일 일본 도쿄 시부야 중심가에 있는 시부야109에서 걸그룹 니쥬의 대형광고판을 배경으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다음으로 트와이스, 아이즈원처럼 외국인 멤버가 들어간 아이돌 그룹이 최근까지의 트렌드였다. 그런데 니쥬는 전원 일본인 멤버로, 한국에서 트레이닝을 거쳐 일본에서 K-pop을 부른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엔터테인먼트 콘텐트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니쥬의 등장은 일본 J-pop 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닛케이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니쥬가 일본 시장을 무대로 어떤 활약을 하는지, 일본에 거점을 두면서 어떻게 글로벌에서 활동할지, 향후 일본의 아이돌 산업이 지향해야 하는 글로벌화의 길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콘텐트 분야에서 한·일 전략적 협력 사례는 K-pop뿐이 아니라 드라마, 웹툰, 애니메이션, 캐릭터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2일 콘진원이 개최한 ‘한·일 콘텐츠 비즈니스 온라인 포럼’엔 한국과 일본의 업계관계자 약 500명이 참가했다. 참석자의 약 80%가 일본 측이었다.
 
네이버 웹툰 '신의탑'.

네이버 웹툰 '신의탑'.

 
포럼의 강연자로 등장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크런치롤의 쿠로스 노부히코(黒須信彦) 재팬프로듀스부 시니어 프로듀서는 한국 웹툰과의 협업 사례를 소개했다. 크런치롤은 최근 네이버 웹툰의 인기 연재작인 '신의 탑', '갓오브하이스쿨', '노블레스'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한국, 미국, 유럽 등에서 대히트를 쳤다. 한국 웹툰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력이 전략적으로 손을 잡은 사례다.
 
30분짜리 13편으로 만든 '신의탑'은 지난 4~6월에 1600만 뷰를 기록, 전 세계 유료회원 300만명 가운데 약 3분의 1이 시청했다. '갓오브하이스쿨'은 2400만 뷰를 넘었다. 쿠로스 프로듀서는 “지역별로는 미국,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 순으로 시청자가 많았고, 팬들의 반응도 상당히 뜨겁다”면서 “제2, 제3의 한·일 협업 사례를 만들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등 OTT 업계에선 이미 한국 콘텐트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로 전쟁이 벌어진 상황이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스’ 등의 대형 히트작이 나오면서 OTT마다 한국 드라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OTT 사업자인 유넥스트는 현재 한국 드라마를 1000편 정도 보유하고 있다. 약 2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의 시장성을 높게 보고 한국 콘텐트를 적극적으로 사들인 결과, 유넥스트는 넷플릭스, 아마존 등 글로벌 OTT 다음으로 일본 내 3위 규모로 올라섰다.
 
일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유넥스트의 드라마 인기 차트 상위권은 대부분 한국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다. [유넥스트 홈페이지 캡쳐]

일본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유넥스트의 드라마 인기 차트 상위권은 대부분 한국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다. [유넥스트 홈페이지 캡쳐]

 
쓰쓰미 덴신(堤天心) 유넥스트 대표이사는 “월평균 20~25시간을 시청하면 충성도가 높다고 보는데, 한국 콘텐트의 주 시청자는 40시간 이상을 보는 열성 시청자들”이라면서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라이브 콘서트 등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콘텐트를 확장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일간 전략적 협업이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한 걸림돌은 양국의 정치 상황이다. 니쥬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제로 지난해 10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관계 악화로 한차례 방송이 연기되기도 했다. 황 센터장은 “한·일관계가 안정되면 교류와 협업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혐한과 반일 정서를 하루빨리 극복하는 것이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