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안 잘릴거야"가 격려 인사...아시아나만 떠는게 아니다

연합뉴스·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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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A씨는 최근 기자에게 “밤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30년 라이벌이던 대한한공을 운영하는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하면서다. 자리 걱정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20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기자들에게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는 통합 이후 인력 구조조정을 안 한다”고 선언했지만, A씨의 불안감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한다. A씨는 “한진 쪽에서 얘기하는 ‘인력’이란 건 근로자 지위에 있는 직원들 아니겠느냐”며 “계약직이나 다름없는 임원은 파리 목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대한항공을 이겨보겠다고 대내·외적으로 적극 나선 임원들이 누구인지 한진 쪽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들이 구조조정 최우선 대상일 거라는 얘기가 벌써 돌고 있다”고 전했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매각키로 추진한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12일) 직장인들은 본인 일자리 걱정에 휩싸였다. ▶항공시장 국제 경쟁력 ▶조원태 한진 회장에 대한 특혜 논란 ▶독과점 우려 등을 놓고 벌어지는 논의는 이들에겐 와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법에 따라 근로자 지위에 있는 중간 관리자 B씨라고 해도 마음이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B씨는 “대한항공 사람들이 회사 고위층을 훗날 장악하게 되면, 그만큼 아시아나 출신들은 업무평가나 승진 경쟁에서 밀릴 거라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눈칫밥을 먹느니 아예 타 업종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비슷한 직원끼리 모여서 얘기해봐도 서로 마땅한 대안이 없어 한숨만 쉰다”고 덧붙였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뉴스1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뉴스1

 
이처럼 직원들 분위기가 뒤숭숭한 곳은 아시아나뿐이 아니다. 현대중공업ㆍGS건설ㆍ유진그룹 등이 인수를 노리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도 사정은 비슷하다. 두산인프라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을 위한 본입찰이 24일 예정돼있다.
 

"'2등급 직원' 되면 어쩌나"

두산인프라 직원 C 씨의 걱정은 회사 주인이 바뀌었을 때 새로운 조직문화 적응이다. C 씨는 “120년 넘은 회사인 두산만의 문화가 있고, 나도 이를 배우며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어서 회사 내 ‘2등급 직원’이 되면 서글플 것 같다”며 “매각 자체가 무산되고 그룹 전체가 정상화되는 게 직원들 입장에선 제일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 씨의 마음처럼 두산그룹 안팎에서 나오는 ‘제값을 받지 못할 거면 두산인프라를 억지로 팔 이유는 없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한다. 이 회사 직원들이 가장 기대를 거는 시나리오다. 두산인프라 지분 36.1%를 가진 두산중공업이 9월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뒤 ‘중대한 고비는 넘겼다’고 자평하고 있는 분위기도 이 같은 기대를 키우고 있다.
 
누가 사들일지 정해진 건 없지만, 매각 불안감을 느끼는 또 하나의 회사는 배달 서비스 요기요다.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현재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인수를 진행 중인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독점 등 부작용 가능성을 이유로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팔아야 한다’는 취지의 심사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다.
서울 성동구 요기요플러스 용산허브 앞. 뉴스1

서울 성동구 요기요플러스 용산허브 앞. 뉴스1

 
다른 회사 기준 과장급에 해당하는 요기요 직원 C 씨는 “요즘 윗분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같은 직원들한테 하는 격려 인사가 ‘넌 안 잘릴 거야’라는 말이다”며 “한마디로 서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아무리 경력이 짧은 직원 입장이라도 회사 대주주가 바뀌어 조직 문화가 급변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7~10년간 조직문화 변화 시도할 듯"

이에 요기요는 아직 공정위 최종 결정이 내려진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직원들을 다독이고 있다. 요기요 한국 운영법인인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관계자는 “본래의 인수 계획이 한국 소비자와 산업 경쟁력 전반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내세워 공정위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직원들 동요에 대해 새 대주주는 장기적ㆍ점진적 변화로 대응할 거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김성중 노무사(노무법인 유앤)는 “최고위급 임원 교체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새 대주주는 섣부른 조직 문화 변경을 시도하기보다는, 인수 뒤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는 7~10년 뒤까지 기다리며 장기적 조직 분위기 쇄신을 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부(인사ㆍ조직) 교수는 “인수합병(M&A) 뒤엔 관리제도 통합 운영이 우선이고, 조직문화 통합은 장기적 과제가 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재무적 손실보다 구성원 간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M&A에 실패하는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는 건 학계에선 교과서적인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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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욱ㆍ곽재민 기자 isot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