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성 예능…유튜브 따라 TV가 독해진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2007년 이혼한 배우 이영하ㆍ선우은숙씨가 2박3일 여행을 통해 관계를 재조명한다는 구성이다. [사진 TV조선]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2007년 이혼한 배우 이영하ㆍ선우은숙씨가 2박3일 여행을 통해 관계를 재조명한다는 구성이다. [사진 TV조선]

“남편이 에너지가 되게 많거든요. 많다 보니 부부관계를 너무 많이 요구해서…. 제가 생각하기엔 32시간(마다)? (부부 관계 후) 이틀이 되기 전 퇴근할 시간쯤 되면 카톡으로 연락이 와요. 장소 불문하고 32시간마다 요구하는데,  제가 체격이 조금 왜소하니까 받아주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지난 8월 31일 방송된 SKY채널·채널A 공동제작 예능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이하 애로부부)’의 한 장면이다. 이날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인 조혜련씨의 동생 조지환씨 부부는 ‘화끈한’ 부부생활 고백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부부관계는) 장소 불문”이라며 “우리 형님(조혜련)네 집에 놀러 가서, 병원 앞 숙소, 주차장에서도 한다”고 했다.
 
‘안녕하세요(KBS2)’나 ‘미운우리새끼(SBS)’ 등 웃음을 유발하는 에피소드나 사연, 또는 신변잡기적 관찰 정도를 다루던 기존 예능과 달리 유명인들의 성(性) 고민, 이혼 후 재회여행, 부친의 불륜 고백 등을 과감하게 다루면서 비판도 이어진다.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이하 애로부부)’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채널A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이하 애로부부)’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애로부부’는 예능판 ‘사랑과 전쟁’이라 불리며 불륜, 고부 갈등, 사기 혼인 등 결혼을 둘러싼 각종 문제를 드라마로 재연하고 출연진 대화를 방영한다. 사이드 메뉴라 할 ‘부부들의 은밀한 이야기-속터뷰’에 출연한 유명 게스트의 농도 짙은 얘기가 화제가 됐다.
 
TV조선이 지난 20일 처음 방송한 ‘우리 이혼했어요’는 이혼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혼 부부가 다시 만나 한 집에서 며칠간 생활하며 부부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관찰 예능이다. 첫 회엔 연예계 잉꼬부부로 불리다 결혼 26년만인 2007년 이혼한 배우 이영하-선우은숙씨가 출연했다. 이들은 첫 데이트 장소였던 청평에서 2박3일을 보내며 묵혀둔 속내를 털어놨다. 첫 만남 때 오열하는 장면부터 선우은숙과 재벌가 회장의 루머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까지 그동안 TV 예능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내용이 이어졌다.
 
지난달부터 방송 중인 SBS Plus ‘언니한텐 말해도 돼’는 20·30 여성들의 민감한 고민을 주로 다룬다. 19일 방송에서 아빠의 불륜으로 고민하는 딸의 사연이 공개되자 MC 이지혜가 과거 자신의 부친이 바람을 피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지혜는 “아빠와 바람피운 분이 호피 무늬 옷을 입었다. 이후 나한테 호피 무늬는 트라우마가 됐다”며 “호피 무늬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아빠랑 바람피울 거 같고, 아빠한테 꼬리를 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한 게 이날 각종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예능의 독한 맛에 출연 연예인도 버거워하는 분위기다. ‘애로배우’의 MC였던 배우 이상아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애로부부’ 하차 의사를 밝혔다. 세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힘들어했던 일, 첫 녹화 후 ‘나 못하겠어 빼주세요’ 했던…. 오늘에서야 내려놨다”며 “내 정신력과의 싸움에서 내가 졌다”고 썼다. 이상아는 “기획할 때부터 MC 선정까지 함께 의논하며 의기양양하게 시작한 ‘애로부부’, 생각보다 현실에선 녹화 분위기가 녹록지 않았다. 나한텐 예능이 아닌 다큐였다”고 고백했다.
 
얼마 전 이혼한 방송인 정가은도 ‘우리 이혼했어요’에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을 소개하는 도중 “저 괜찮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런 TV 예능이 쏟아지는 가장 큰 이유로는 치열한 경쟁이 꼽힌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유튜브는 별다른 규제 없이 자극적 콘텐트를 양산하고 이에 맛 들인 대중들은 ‘TV는 식상하고 재미없어’라고 반응하니 수위를 올린 것”이라며 “사회에서 가장 자극적 소재는 성문제인데, 이를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건 부부 토크이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이혼부부 예능”이라고 설명했다.
 
예능프로그램 범람도 한 요인이다. 현재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TV 등에서 제작되는 예능프로그램은 191개. 한 예능PD는 “제작비를 아끼려는 지상파도 드라마를 줄이고 예능을 늘리며 경쟁 구도가 점점 치열해진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독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입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청률 성적표는 어떨까. ‘우리 이혼했어요’는 20일 첫 방송이 10.2%(닐슨코리아 조사결과)를 기록하며, 시작과 동시에 금요일 오후 예능 1위를 차지했다. ‘애로부부’도 비교적 순항 중이다. 2~3%의 시청률은 높다고 하긴 어렵지만 ‘본격 19금 부부 토크쇼’를 표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전했다는 평가다. 화제가 된 조씨 부부의 고백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67만건을 기록했다.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디어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대가 미디어를 모방하게 되기도 한다”며 “이혼, 불륜, 가정폭력, 사기결혼 등이 미디어를 통해 콘텐트로 과도하게 생산되면 사회가 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방영시간을 지금보다 더 뒤로 돌려 청소년이 접하기 어렵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해당 방송국에서 관련 내용을 사전 보도자료 등으로 배포해 각 언론사가 이를 경쟁적으로 받아쓰면서 시청하지 않아도 간접 시청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