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국민 생명 지키지 못한 우리 군, 이젠 믿을 수 있나

연평도 포격도발, 그 후 10년

연평도 해병대 장병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진지가 불타고 있는 가운데 K-9 자주포에 올라 대응사격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임준영 상병은 철모가 불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K-9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사진 국방부]

연평도 해병대 장병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진지가 불타고 있는 가운데 K-9 자주포에 올라 대응사격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임준영 상병은 철모가 불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K-9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사진 국방부]

꼭 10년 전 일이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구경 240㎜ 방사포 등으로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한 지 일주일쯤 되는 날이었다. 그때 필자는 국방부 대변인으로 갔다. 그 시점 우리 군은 연평도에서 북한의 포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북한군은 170여 발을 쐈지만, 연평도에 주둔한 해병대는 80발을 쐈기 때문이다. 비례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5시쯤 불타는 철모를 쓴 채로 155㎜ K-9 자주포에 올라 대응사격을 준비하는 해병대 병사의 사진을 공개했다.
 
불타는 철모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는 해병대 장병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본 국민은 감동했다. 북한 도발 이틀 뒤 연평도를 순시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적의 포격에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13분 만에 대응사격을 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말한 적 있다. 김 장관 또한 포병 출신이어서 포격을 받아 파편이 튀는 상황에서 전투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어서였다. 해병대는 북한 포격 직전 사격훈련을 마쳤고, K-9의 포신이 서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포를 미처 정비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북한군 포탄이 떨어져 터지는 현장에서 K-9을 운전해 포신을 북쪽으로 돌리고, 외부에 있는 장약과 포탄을 들고 와 쏘는 건 여간 위험하지 않다. 목숨을 걸어야 가능하다.
  
민간인 희생에 자책감
 
우리 군의 대비태세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연평도 도발 열흘 뒤에 취임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응징계획을 세웠다. 연평도 전투는 종료했지만, 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군이 더 추락하면 대한민국의 존립이 문제가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북한의 도발로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군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있었다. 그래서 내놓은 게 ‘자위권적 대응과 응징’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군은 유엔사 교전규칙과 정전협정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북한군이 도발해도 비례성 원칙에 따라 대응하고, 군사분계선 너머로 총탄을 쏘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이 장사정포로 공격할 경우 우리 군도 야포 수준으로 대응한다는 게 비례성이다. 전투기나 함정으로 북한군을 타격하는 것은 과한 조치여서 유엔군사령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근거 없는 강박감도 있었다. 또 전투가 끝난 뒤 추가 대응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렇게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김관진은 달랐다. 유엔사 교전규칙은 우발적 충돌 때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북한이 고의로 도발하면 자위권을 발동해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게 위협의 근원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대응원칙도 현장 지휘관 책임 아래 먼저 조치하고 보고는 나중에 하라고 했다. 윗선에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라’는 것이다. 김 장관은 12월 20일 연평도 서남방 해상으로 실사격훈련을 계획했다. 연평도 포격 때 해병대가 못다 쏜 마무리 사격이라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걱정이 컸다. 연평도 해병대가 사격훈련을 하는 해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이지만, 북한군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북한군은 우리 군이 그 해상으로 사격하면 재차 도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북한군이 또다시 도발하면 전투기와 이지스함까지 동원해 자위권 차원에서 도발 원점을 응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럴 경우 북한 황해도와 우리 백령도·연평도·경기도 일원까지 확전될 수도 있는 터였다. 큰 각오가 있어야 하는 작전이었다. 그런 작전계획을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이 컸지만, 승인했다.
  
강경 방침에 당황한 주한미군
 
그러나 정작 당황한 쪽은 유엔군사령관인 주한미군사령관이었다.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이 급히 서울로 날아왔다. 멀린 의장은 그해 12월 8일 김 장관과 면담에서 비례성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악순환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며 “이번 사격훈련으로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고 했다. 연평도 포격도발이 북한 김정은의 ‘등극’에 앞선 기획인 만큼 한국이 가만히 있으면 도발이 반복될 것이란 얘기였다.
 
멀린 의장은 “북한에 미친 개가 둘이다. (사격훈련을) 강력하면서도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결국 김 장관에 동의해 돕겠다고 했다. 이어 멀린 의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한국은 주권국이고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며 “대응수단은 한국의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게이츠는 훗날 회고록 『임무(Duty)』에서 ‘한국이 전투기와 야포 등으로 과도한 보복공격을 계획했다’고 공개했다.
 
사격훈련은 12월 20일 계획대로 진행됐다. 연평도 서남방 해상에 K-9 자주포와 105㎜ 견인포, 81㎜ 박격포, 벌컨포를 쐈다. 공중에는 F-15K 및 KF-16 전투기가, 해상에는 이지스함 등 구축함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 응징할 참이었다. 해병대는 물론 공군과 해군 작전사령부, 육군 1·3군까지 비상대기했다. 전군 차원에서 대비한 것이다. 군 당국은 북한의 재차 도발에 대비해 백령도와 연평도,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마을과 임진각 관광지 민간인까지 대피시켰다. 3차례에 걸쳐 1시간가량 사격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그런데 연평도 사격훈련이 끝났는데도 북측의 반응은 없었다. 말부터 앞세운 북한군은 자존심은 상하지만, 단단히 벼른 우리 군의 대응에 도발해봤자 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격훈련 사건으로 한국군의 정신 자세는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이 도발할 테면 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런 대응태세는 다음날 애기봉 점등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애기봉에 점등하면 공격하겠다는 분위기였으나, 국방부는 점등식을 강행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해당 부대와 지원세력, 심지어 지휘부인 북한군 4군단 사령부까지 타격하겠다는 기세였다. 북한은 애기봉 점등에도 엄포만 놨지 정작 도발하지 못했다. 우리 군의 사기는 살아났다. 자신감도 생겼다. 이젠 북한군 도발 때 일선 부대에 “사격하라 말라” 지시할 이유도 없어졌다. 북한군 도발에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대응하는 게 일상화됐다. 이후 북한군은 감히 도발하지 못했다. 북한의 도발 고리를 끊은 것이다.
 
북한군은 직접 도발에 부담이 커지자 2015년 8월 꾀를 냈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남쪽 출입구에 목함지뢰를 몰래 매설했다. 오래전 우리 군이 매설한 지뢰가 오발로 터진 것처럼 위장했다. 그러나 그조차 들통이 났다. 이에 국방부가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군은 14.5㎜ 고사총과 76㎜ 포를 쐈다. 그러나 우리 군의 현장 지휘관은 스스로 판단해 구경 155㎜인 K-55 곡사포 20여 발을 쐈다. K-55가 쏜 포탄은 북한군 GP 코앞에 집중적으로 떨어졌다. 북한군은 K-55의 정확도와 위력에 질겁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군은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철거하지 않으면 전 전선에서 공격하겠다고 최후통첩했다. 그때 국방부는 확전에 대비해 부상 장병을 치료할 민간병원을 계약했고, 긴급 수혈할 혈액까지 확보했다.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우리 군의 응전자세에 북한군은 굴복했다.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안했고, 사실상 사과했다. 평화를 지키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들어맞았다.
  
군 사방 뚫려 … 정신 재무장 필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대응태세를 주도한 김관진 전 장관은 적폐로 몰려 재판을 받고 있다. 기원전 406년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맞아 싸운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승리한 장군 8명을 사소한 빌미로 단죄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테네 해군은 1년 뒤 스파르타와의 해전에서 지휘할 장군도 전투 의지도 없어 전멸했다. 나라는 복속되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평도 K-9 사격훈련과 한·미 연합해병훈련은 2018년 4월부터 중지됐다고 한다. 주한미군도 MLRS(다연장포)와 아파치 공격헬기의 사격훈련을 못 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흔들리고, 우리 군은 사방이 뚫렸다.
 
반대로 연평도 도발을 기획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보란 듯이 백령도 인근의 창린도에서 사격훈련을 지휘했다. 김 위원장이 사격을 지시한 해상은 ‘9·19 남북군사합의’에서 사격하지 않기로 한 완충수역이다. 합의를 버젓이 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연평도 포격도발 10주기에 휴가를 갔다.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기념일에도 그랬을까.
 
북한의 도발 사이클이 내년 초 미 행정부의 교체로 재연될 소지가 크다. 우리 군이 정신을 재무장할 때다. 다행히 지난 23일 서욱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합참의장과 육군총장 등이 연평도 전사자 추모식에 참석했다. 서 장관은 목함지뢰 사건 때 작전을 기획한 합참 작전부장이었다. 같은 시기에 남영신 육군총장은 백골부대로 이름난 3사단장을 지냈다. 이들 모두 북한의 도발을 겪었다. 그때의 정신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유엔사 교전규칙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제정한 것으로 정전협정에 따라 우발적인 총격전이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칙. 교전규칙은 2급 비밀로 분류돼 있는데 자위권 발동 차원의 대응을 원칙으로 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