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지도자, 덩샤오핑의 지혜에서 배워야"…과거사 문제 풀 '통 큰 결단' 촉구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열린 제 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열린 제 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한일 경제인들이 27일 제52회 한일경제인회의를 열고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어갈 방안을 논의했다. 한일경제인회의는 1969년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양국이 번갈아 개최해온 협의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한차례 연기된 뒤 서울 JW메리어트호텔과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을 화상으로 연결해 개최했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홍석현(사진) 한일비전포럼 대표 겸 중앙홀딩스 회장은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해 "단 하나의 갈등 요인이라도 추가되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 될 수 있다"고 진단하며 "한일협정 60주년인 2025년을 목표로 지금부터 역사화해 프로세스에 돌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역사 문제를 직접 다툼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미래를 공유함으로써 과거사를 풀어가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일, '덩샤오핑의 지혜' 상기해야"  

홍 회장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 지도자들이 '덩샤오핑(鄧小平)의 지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방 개혁 원년인 1978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댜오)를 둘러싼 양국 분쟁에 대해 "지금의 중·일 지도층보다 더 지혜로울 다음 세대에게 이 문제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후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전쟁 때 큰 고난을 일으킨 것에 유감을 표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에 거액의 원조를 단행했다. 이같은 '통 큰 타협'을 통해 일본은 광대한 중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고, 중국은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다.
 
홍 회장은 한일 관계의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과 관련해선 "양국의 지도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사법절차에 개입할 수 없는 만큼 특별입법 절차를 통해 일본에 퇴로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현실적인 수순이라고 제시했다. 이런 전향적 조치를 통해 일본에 끌려다니지 않고, 단번에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 정부는 과거 두 차례 배상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국회에서 특별입법을 통해 세 번째의 배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친일시비로부터 자유롭고, 민주화의 정통성을 가진 문재인 정부는 이런 결단을 내릴 자격과 여유가 있다"고도 했다. 
 
홍 회장은 대신 일본 정부는 불법적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정부 간 합의의 형태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일 함께해야 美·中·北으로부터 존중받아"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열린 제 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장진영 기자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열린 제 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장진영 기자

 
홍 회장은 한국이 일본과 서둘러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 문제를 들었다. 그는 "한국이 일본과 협력적 관계를 복원할 때 미국과의 관계를 증진할 수 있고, 중국으로부터도 더 공정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일본, 미국, 중국의 존중을 받는다면 북한도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최근 스가 일본 총리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특히 수백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일청구권 자금은 북한이 개방됐을 때 경제 개발의 마중물이 될 것이며, 북한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개발 수요는 돌파구가 필요한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홍 회장은 전망했다. 
 
홍 회장은 또 한·일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코로나19가 진정되는대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일비전포럼의 유엔사 후방기지 방문은 한일 양국과 미국 3각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후쿠다 전 총리 "정치·외교적 상황 개선 위해 분발해야"

이날 행사엔 한국 측에서 박기영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가 참석했다. 박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합의로 양국이 참여하는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족했다"며 "양자 무역 확대는 물론, 제3국에서의 한일 양국 협력을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대사는 "최근 한국 고위급 인사가 잇따라 일본을 방문하는 등 한국 정부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양국이 늘 부침이 있었지만 한일 경제인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와 우정은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측에서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제91대 일본 총리와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참석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양국은 가장 소중한 이웃 국가이자 바꿀 수 없는 무역파트너"라며 "현재의 정치·외교적 어려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더욱 분발해달라"고 당부했다. 누카가 회장도 "얼마 전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 7명의 한국 국회의원이 방문했을 때, 양국 정상이 회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전력을 다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2018년 평창올림픽 때 양국이 노력한 것처럼, 내년 도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상호 협력을 구축해나가자"고 제안했다.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한일경제인회의가 열렸다. 홍석현(오른쪽) 중앙홀딩스 회장, 박기영(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김윤(왼쪽) 한일경제협회 회장이 내빈소개에 박수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한일경제인회의가 열렸다. 홍석현(오른쪽) 중앙홀딩스 회장, 박기영(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김윤(왼쪽) 한일경제협회 회장이 내빈소개에 박수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한편, 이날 한일경제인회의는 토론을 마친 뒤 공동성명을 통해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합의 환영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s) 달성 등 공통 과제를 위한 상호 협력 ▲청소년 및 지역 간 교류 등 한일우호 인프라 추진 ▲민간교류 추진을 위한 양국 정부의 지원 촉구 등을 선언했다. 또 내년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