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공원 토끼와 놀던 은퇴자, 어떻게 유튜버로 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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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수 사진 오민수

[더,오래] 오민수의 딴생각(4)

때론 운명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60대의 한 남성이 그런 경우였다. 그가 퇴직 후 하는 일이라곤 올림픽 공원에 앉아 그곳에 방생된 토끼들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집에서 준비해 온 건초와 청경채를 토끼에게 나눠주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또 한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30대 초반 젊은이가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10년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서른을 넘기고 말았다. 퇴근 후 그가 하는 일이라곤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을 탐독하며 하루 종일 모니터를 응시하는 일이었다.
 
뭔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운명은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주어진 운명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더 몰입했다. 그들은 운명에 이렇게 반응했다.
 
중년 남성은 올림픽 공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자꾸 토끼가 눈에 밟혔다. 결국엔 스마트폰으로 토끼 영상을 찍어와 집에서도 보게 됐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자 한계에 봉착했다. 그것은 영상을 저장할 메모리의 한계였다.
 
이 문제를 놓고 고심을 하다가 유튜브라는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에게 유튜브란 스마트폰에 있는 영상을 옮겨 담을 수 있는 저장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용한 유튜브에서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영상을 누군가가 보기 시작하더니 어떤 영상은 조회수가 1만이 훌쩍 넘어버렸다. 세상엔 토끼에 관심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유튜브의 특성상 조회수가 높으면 자동으로 광고가 붙고 수익이 발생하는데, 그때부터 토끼 영상은 나홀로 취미가 아니라 토끼 애호가들이 구독하는 콘텐츠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유튜버 '꿈산'의 토끼 영상. [사진 유튜브 꿈산 캡처]

유튜버 '꿈산'의 토끼 영상. [사진 유튜브 꿈산 캡처]

 
이번엔 공장 젊은이를 보자. ‘공포 게시판’이나 탐독하던 그는 어느새 자신이 창작한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제대로 오타쿠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의 글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단순한 글이지만 중학교를 중퇴한 그에게 글쓰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올린 글에 열광하는 댓글이 달릴 때마다 그 짜릿함에 손을 놓을 수가 없었고, 그는 그렇게 독학으로 자신의 글을 연마하였다.
 
지하 공장에서 뜨거운 아연을 거푸집에 부어 지퍼나 단추 같은 것을 만들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릴 이야깃거리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커뮤니티 글쓰기가 1년 6개월이 지나자 300여 편의 이야기로 업로드되었다. 원고지로 따지면 어림잡아 1만 매 분량이었고, 그것은 조정래 작가가 6년에 걸쳐 완성했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맞먹는 분량이었다.
 
그의 글은 독창적이었다. 애당초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으니 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그에게는 기성 문학의 클리셰를 파괴하는 필력이 내공처럼 쌓이고 있었다. 그것을 누군가는 감지했고 결국 그는 어느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첫 단편 소설집 『회색 인간』은 출간되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인세로 380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총 8권의 소설집을 출간했을 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살인자의 정석’을 연재 중이다.
 
김동식 작가의 첫 소설 '회색 인간'. [사진 오민수]

김동식 작가의 첫 소설 '회색 인간'. [사진 오민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시작과 끝이 다른 양상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보편적인 삶의 가치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끝을 보면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란 게 애당초 무의미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란 그 자체로 어떤 기준을 내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기준이 될 따름이다.
 
지금부터, 이와 관련된 조금은 섬뜩한 실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두 개의 독방이 있다. 각각의 방에는 한 사람씩 들어가 있는데, 그들은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온몸이 묶여 있는 상태다. 그들은 그 상태로 일주일을 버텨야만 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들의 이마 위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장치를 했다. 이 물방울은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첫 번째 방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전달됐다. “당신은 이 방에서 일주일을 홀로 지내야 합니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당신의 이마 위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질 것입니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 고통을 주지 않겠지만, 당신의 이마 한가운데 계속 떨어진다면 점점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당신은 과연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독방의 사람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해 떨어지는 물방울로 인해 이마에 구멍이 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왔다. 일주일이 지난 후, 그는 이마에 시퍼런 멍 자국이 생겼고 심각한 허기와 갈증이 더해져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두 번째 방에도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전달됐다. “당신은 이 방에서 일주일을 홀로 지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신의 이마 위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질 것입니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 희망을 주지 않겠지만, 당신의 이마 한가운데 계속해서 떨어진다면 뭔가 희망을 주지 않을까요? 당신은 일주일을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번째 독방의 사람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얼굴의 안면 근육을 이용해 떨어지는 물방울을 컨트롤하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술을 적시는 데 성공하더니 어느새 목을 축일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는 물방울 덕분에 큰 갈증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운명이었을까? 분명 같은 환경이었으니까 똑같은 운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똑같은 물방울이 떨어졌을 뿐인데 한 사람에게는 고통을, 한 사람에게는 희망을 준 메시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메시지는 그들 자신의 생각이었다.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각자의 생각은 달랐고 그것이 전혀 다른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멀티캠퍼스 SERICEO 전직지원사업 총괄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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