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 출신 겔싱어, 위기의 인텔 구해낼까

팻 겔싱어 신임 인텔 CEO. [사진 인텔]

팻 겔싱어 신임 인텔 CEO. [사진 인텔]

‘인텔 아웃사이드’의 위기에 직면한 반도체 기업 인텔이 최고경영자(CEO)를 갈아치웠다. 인텔은 밥 스완 CEO가 다음달 15일 사임한다고 13일(현지시간) 밝혔다. 대신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VM웨어의 팻 겔싱어(사진) CEO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사실상 문책성 경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완의 재임 기간은 역대 인텔 CEO 중 가장 짧다”며 “세계 최고 반도체 업체라는 지위를 잃은 탓이 크다”고 전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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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불렸다. 인텔은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작동하는 데 필요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했던 회사였다. ‘인텔 인사이드’라는 광고 문구는 세상을 움직이는 인텔의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지난해 증시의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줬다.
지난해 11월 애플이 맥북에 쓰일 자체 CPU M1을 공개하는 모습.[EPA=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애플이 맥북에 쓰일 자체 CPU M1을 공개하는 모습.[EPA=연합뉴스]

인텔은 2년 전부터 사세가 본격적으로 기울었다. 대형 고객들이 잇따라 ‘탈 인텔’을 선언하면서다. 클라우드 서비스 최강자인 아마존은 2018년 자체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해 쓰고 있다. 한때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이뤘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자체 반도체를 사용할 계획이다. 애플도 맥북(노트북)에 자체 CPU(M1)를 탑재하기로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AP=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AP=연합뉴스]

인텔이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게 위기의 원인이라고 반도체 업계에선 보고 있다. 아마존·MS·애플은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 덕분에 자체 CPU를 만들 수 있었다. ARM은 반도체 설계 라이선스를 제공해 이익을 내는 회사다. ARM은 한때 인텔의 ‘아성’으로 통했던 서버와 PC용 반도체에도 통하는 기술력을 확보했다. 주요 정보기술(IT) 기업 입장에선 ARM의 설계 라이선스를 이용해 자체 CPU를 만드는 게 유리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전력을 적게 쓰는 ARM의 기술이 업계를 매료시켰다”고 전했다. 인텔과 경쟁 관계인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ARM을 인수했다.
‘반도체 왕국’ 인텔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도체 왕국’ 인텔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인텔은 최근 몇 년간 14㎚(나노미터, 1㎚=10억 분의 1m)칩에서 10㎚칩으로 공정을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5㎚ 수준에 도달한 대만 TSMC나 한국 삼성전자에 크게 뒤진다.
리사 수 AMD CEO가 13일 열린 CES 2021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CES 2021 유튜브 캡처]

리사 수 AMD CEO가 13일 열린 CES 2021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CES 2021 유튜브 캡처]

최근 반도체 기업들은 설계기업(팹리스)과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로 분화하고 있다. 인텔처럼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함께하는 종합반도체기업(IMD)에는 불리한 상황이다. IT 부문의 시장조사업체인 패스마크소프트웨어는 인텔이 올해 1분기 데스크톱 CPU 시장에서 경쟁사인 AMD에 밀릴 것으로 예상한다.
AMD에 데스크톱 CPU 시장 1위 뺏긴 인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AMD에 데스크톱 CPU 시장 1위 뺏긴 인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인텔이 겔싱어를 새로운 CEO로 선택한 것은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겔싱어는 1979년 인텔에 입사한 뒤 30여년 간 기술 개발을 이끌고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오른 인물이다. WSJ은 “재무 담당자 출신인 스완보다 기술자 출신인 겔싱어가 인텔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적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인텔의 행보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인텔이 TSMC와 삼성전자에 일부 생산을 맡기는 걸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의 월가에선 오는 21일 인텔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위탁생산 계획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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