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코스피 3000이 자랑할 일인가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코스피 3000을 한국 경제의 밝은 미래와 연결 지었다. 한 여당 의원은 주가와 실물경제의 괴리를 걱정하는 지적에 “희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마라”고 맞받았다. 여권의 이런 태도, 애잔하기까지 하다. 집권 4년의 경제 성과가 얼마나 보잘것없으면 유동성으로 밀어올린 주가를 자랑으로 내세울까.
 
코스피 3000은 정부의 실력과는 아무 상관없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푼 돈이 실물경제로 물꼬를 트는 대신 자산시장으로 몰린 결과임을 여권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펄펄 끓는 증시와는 반대로 경제 현장은 여전히 냉골이다. 일자리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줄었고, 상·하위 20%의 순자산 격차는 정부 출범 때보다 1.67배나 커졌다〈중앙일보 1월 13일자〉. 자영업자·중소상공인·실업자의 눈물을 생각한다면 정부는 지금의 주가를 오히려 계면쩍어해야 한다. 유동성 잔치를 벌이는 여의도 뒤편의 헬스장 주인들은 생존을 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학개미가 기관과 외국인을 이겨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코리아 프리미엄이 생겼다”. 코스피 3000에 흥분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흥분하는 대신 투자 대가였던 존 템플턴의 충고를 되새길 때다. “영어 단어 중 가장 비싼 네 단어는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는 말이다.” IMF 외환위기, 2000년대 초 IT 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도 네 단어의 착각은 어김없이 작동했었다.
 
실물경제와 주가의 관계를 산책하는 주인과 개의 관계로 흔히 비유한다. 개(주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결국 주인(실물경제) 옆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돈이 마구 풀리면서 유동성의 끈이 길게 늘어났다. 지금 목줄이 느슨해진 개가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 개가 사고 칠 위험성은 커진다. 자랑 대신 이런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가 개인투자자의 비위만 맞추는 것은 위험하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 공매도 금지를 연장하라는 여권의 압력이다.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불만은 이해가 간다. 전업 투자자인 한 지인은 “기관과 외국인의 전유물인 공매도 투자의 문을 개인에게도 넓히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정보 비대칭이 심한 소형주는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표에 눈먼 정치가 끼어드는 순간 시장은 왜곡된다.
 
카나리아가 탄광의 유독가스 탐지기로 쓰인 이유는 소형 조류의 특징 때문이다. 공중을 날아야 하는 새는 몸에 지방을 쌓는 대신 끊임없는 먹이 활동과 활발한 신진대사라는 진화 방식을 택했다. 분당 100회 이상의 호흡수, 1000회에 이르는 맥박수는 이런 진화의 결과다. 생존을 위해서는 공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게 됐다. 주식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카나리아와 비슷하다. 주식판은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보나 자금, 운용 능력에서 개인이 기관 및 외국인의 상대가 되기는 힘들다. 개인투자자가 살아남으려면 더 예민해져야 한다. 개인투자자에 대해 무한정 보호막을 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둔감한 카나리아의 운명은 뻔하다.
 
개인투자자를 애국자로 추켜세우는 것은 무책임하다. 총탄이 작렬하는 전쟁판에 정규군 대신 훈련도 안 된 학도병을 투입하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이들이 하락장에서 주식을 팔고 떠나면 매국노라며 뒤에서 총을 쏠 건가. 무엇보다 돈 벌겠다고 뛰어든 개인투자자의 눈치만 보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이들을 위험한 머니게임 최전선으로 내모는 대신 우리 경제의 근본적 문제점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떤가. 약자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밀어붙인 정책들이 하나같이 오히려 서민의 고통을 키우는 이유 같은 것 말이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