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인 1호’ 박제사 “박제는 죽은 동물에 새 생명 주는 일”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국내 1호 박제사 류영남(52)씨를 인터뷰했다. 박제된 수달의 모습. 왕준열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국내 1호 박제사 류영남(52)씨를 인터뷰했다. 박제된 수달의 모습. 왕준열

호랑이, 수달, 참새가 보입니다. 여기가 동물원이냐고요? 아닙니다.
 
이곳은 인천광역시 서구에 있는 국립생물자원관의 박제 작업실입니다. 자연사하거나 사고사한 동물의 사체를 기증받아 연구·교육 목적의 박제로 만드는 공간입니다. 
 
‘국가 공인 1호 박제사’로 불리는 류영남(53)씨가 작업하는 곳이죠. 류씨는 17살 무렵 기르던 새가 죽자 안타까운 마음에 새를 박제로 남기려다 박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 있는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박제를 배웠고, 어느새 그의 직업이 됐다고 합니다. 
 
경력 35년의 그는 국내에서 공무원으로 채용된 첫 박제사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한국뜸부기, 국제 보호종 큰바다사자 등 1000여점의 동물을 박제했습니다. 
 
그가 전문 서적과 씨름하면서 만든 생동감 넘치는 박제 동물들은 귀중한 생물자원이자 훌륭한 교육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류씨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동물이 찾아왔을까요?
  
#'국가 공인 1호 박제사'가 들려주는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1년에 100여 마리 박제…제주 바다사자도”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국가 공인 1호 박제사' 류영남(52)씨를 만났다. 왕준열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국가 공인 1호 박제사' 류영남(52)씨를 만났다. 왕준열

오늘 박제할 동물에 대해 알려주세요.
오늘은 괭이갈매기인데요.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가 돼 치료하던 중 자연사했어요. 자세히 보면 오른쪽 날개가 꺾여있고 배가 홀쭉하죠. 아마 날지 못해서 굶은 것 같네요. 오늘은 이 괭이갈매기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합니다.
 
 
박제하는 동물은 주로 어떤 경로로 오나요?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을 텐데요. 대부분 전국야생동물구조센터, 유역환경청, 조류도협회 등을 통해서 자연사하거나 사고사한 동물이 기증됩니다. 도심 주변이나 도로에서 사고로 죽는 동물이 많이 있어요. 산이 가까운 곳, 특히 건물 외벽이 유리로 된 경우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죽는 경우도 많아요. 유리에 비친 산을 진짜 산인 줄 착각하고 들이받는 경우죠. 
지난달 21일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류영남씨가 괭이갈매기를 박제하는 모습. 왕준열

지난달 21일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류영남씨가 괭이갈매기를 박제하는 모습. 왕준열

  
얼마나 많은 박제 작업을 하나요?
연간 100여점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계절별로도 들어오는 시료의 양이 천차만별인데요. 이게 철새의 이동시기에 따라 달라져요. 철새가 이동할 때 새들이 사고사를 많이 당하거든요. 여름 철새가 들어오는 4~5월과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가 나가고 들어오는 9월~11월 사이 많이 기증됩니다.
 
박제사로 일하며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박제를 동물 사냥을 통해 만든다고 생각하거나 불법으로 볼 때도 잦아요. 또 박제를 '혐오스러운 기술'로 보는 경우도 있고요. 저를 인터뷰한 어느 기사에 '동물이 한번 죽었으면 됐지 왜 두 번 죽이는 일을 하냐'라고 붙은 댓글을 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박제사는 단순히 동물을 박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연구용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그런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박제기술정보와 테크닉이 부족했을 땐 실물을 100% 구현하지 못해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박제 작품이 있다면
대부분 박제하러 온 동물은 사고를 겪고 오기 때문에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게 많아요.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몸무게 4~5g짜리 새를 박제해본 적도 있어요. 제주도 비군도 앞바다에서 폐사한 바다사자도 떠오릅니다. 바다사자를 인양해서 오는 과정이 일주일 이상 걸렸는데 그동안 성게들이 바다사자의 사체를 훼손해 가슴이 아팠죠. 부패가 진행되는 중에 박제해야 해 작업도 까다로웠고요.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남겨주고 싶어서 열심히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괭이갈매기 박제가 거의 진행된 모습. 눈썹 털을 정리해주고 좀 더 모양을 잡아준뒤 건조해줘야 완성된다. 왕준열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괭이갈매기 박제가 거의 진행된 모습. 눈썹 털을 정리해주고 좀 더 모양을 잡아준뒤 건조해줘야 완성된다. 왕준열

  
작업이 굉장히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수달 같은 경우는 박제 건조까지 15일 정도로 잡아요. 바다사자 정도 되는 큰 시료의 경우엔 48일까지도 걸리죠. 포유류와 조류는 박제과정이 다 다른데요. 일반적으로 시료가 들어오면 세척한 뒤 머리, 날개, 몸 전체 길이 등을 측정하고 가죽을 벗깁니다. 가죽이 벗겨진 몸은 따로 유전자 시료 은행으로 보내서 유전자 시료로 확보하죠. 포유류는 가죽에 방부제 역할을 하는 염장 작업을 추가로 해야 합니다. 그 뒤에 날개, 머리 등에 고정할 수 있는 철사를 넣습니다. 다음으로 솜을 넣어 근육을 만든 뒤에 몸통 크기의 모형을 넣어 대략적 틀을 만들죠. 마지막으로 의안을 넣고, 포즈를 잡아준 상태에서 건조를 시켜줘요.
 
박제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도 많을 텐데…
가끔 국립생물자원관에 전화가 와요. 집에서 십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박제가 가능하냐고요. 이럴 때 가장 난감하죠. 하지만 죽어서도 곁에 계속 두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니까 듣기 좋게 거절했던 기억이 나네요. 혹은 본인이 사고사당한 동물을 주웠는데 박제가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도 많이 오고요. 그럴 땐 "전국야생동물센터로 보내달라"고 설명해 드려요. 
 

"죽은 동물에 새 생명 주는 보람된 직업"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찍은 부엉이의 모습. 왕준열

지난달 21일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찍은 부엉이의 모습. 왕준열

현재 한국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박제사는 20명 남짓이라고 합니다. 류씨는 "죽은 동물을 다루는 일이 절대 쉽지 않지만 매 순간이 보람차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박제기술에 대한 길잡이책을 만들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류씨에게 배운 제자는 7명인데요. 그중 3명은 서울대공원, 낙동관생물자원관 등에서 박제사로 활약 중이죠. 그는 오늘도 죽은 동물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사고사당해서 엉망인 모습으로 들어온 동물들이 제 손을 거쳐서 새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품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학생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 얼마나 보람을 느끼는지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왕준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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