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주의 건재" 바이든, '폭동 현장' 의사당 계단서 취임 선서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취임 선서를 하게 될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서쪽 계단 모습.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취임 선서를 하게 될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서쪽 계단 모습.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취임 당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서쪽 계단에서 취임 선서를 한다. 2주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점거했던 바로 그곳이다. 
 
폭력 사태의 재발을 우려해 의사당 안에서 하는 방안도 고려됐지만 역대 대통령들처럼 야외 계단에서 행사를 열기로 확정한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는 폭력에 굴하지 않으며, 여전히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반영됐다.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 내정자는 17일 ABC에 출연해 "바이든 당선인은 전통에 따라 의사당 서쪽 계단 야외에서 취임 선서를 할 것"이라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적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바이든 최측근으로 취임식 준비위원장을 맡은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의원은 최근 MSNBC에 출연해 "안전을 위해 취임 선서를 의사당 내 로툰다 홀이나 회의장 중 한 곳에서 하는 게 낫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6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서쪽 벽을 기어 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6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서쪽 벽을 기어 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야외 행사가 확정되면서 취임식 당일 주변 통제와 경비 태세는 더욱 삼엄해질 전망이다. 백악관 비밀경호국 지휘 아래 군과 경찰은 1년 넘게 취임식을 준비해 왔다. 취임식 날에는 전체 50개 주에서 집결한 주 방위군 2만5000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취임식 참석 인원도 대폭 줄였다. 경호구역 내 참석 인원이 예전에는 약 20만명이었으나 이번에는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약 3000명으로 줄였다.
 
 
야외 취임 선서 강행과 함께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미국인과 세계를 향해 화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바이든은 지난 2개월간 직접 연설문 작성 과정을 챙기며 공을 들여왔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론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취임사에서 당선인은 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단합시키며, 성과를 내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바이든은 "나에게 투표한 사람만의 대통령이 아닌,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이번 취임식 주제가 '하나 된 미국'이라고 지난 11일 소개했다.

 
주 방위군이 17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 행사를 앞두고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인근에 배치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주 방위군이 17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취임 행사를 앞두고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인근에 배치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대선 과정에서 증폭된 미국 사회의 분열과 증오를 극복하고 추락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게 당선인의 의지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이날 CNN과 SSRS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75%는 "바이든 당선인이 합법적으로 대선에서 이길만큼 충분한 표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바이든이 합법적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5%였다. (1월 9~14일 미국 성인 1003명 대상 조사, 신뢰도 95%에 표본오차 ±3.7%포인트)
 
인수위 내부에서도 바이든이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도 가장 어려운 여건 속에서 취임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클레인 비서실장 내정자는 "바이든 당선인은 아마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취임하는 대통령일 것"이라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미국이 대공황에 허덕이던 1933년 취임했다.
 
미국 내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직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한 연설을 바이든이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케네디 상원의원은 킹 목사 피살 소식을 처음 전하면서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나 증오, 폭력이나 무법천지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 서로에 대한 연민, 흑인이든 백인이든 간에 이 나라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정의감이다"라고 연설했다.
 
바이든 취임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으며, 위기에 대통령직을 맡게 된 역대 대통령 취임사를 얼마나 원용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공영라디오 NPR은 전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