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억류' 법대로 한다던 이란, 3주동안 혐의 확정 못했다

한국 선박을 억류한 이란이 정확한 혐의통지 등 사법절차의 시작 단계조차 밟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에 "사법 절차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외교적 협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이란 측의 주장과 달리 선박 억류가 확실한 혐의나 이를 뒷받침할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방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선박 '한국케미' 모습. 한국케미 선박 관리회사 직원이 5일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되는 한국 선박 '한국케미' 모습. 한국케미 선박 관리회사 직원이 5일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있다.

"억류 선원에 혐의 통지하지 않아…현장 조사도 아직" 

이와 관련해 외교 소식통은 "어떤 혐의로 억류나 체포를 한 것인지 당사자에게 혐의를 알려주는 게 조사의 시작인데 아직 억류된 선원들은 혐의 통지조차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선원이나 선사에 구체적인 혐의를 고지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정부가 외교 경로를 통해 요청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포 직후 혁명수비대와 이란 해운협회장 등은 "억류된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법을 어겼는지에 대해선 3주 가까이 함구하고 있다.  
 
여기에 억류된 선박에 대한 제대로 된 현장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한국케미'호의 선사인 디엠쉽핑 관계자는 "1주일 전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아직 어떤 형식의 조사도 시작되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1일 "이란 측이 주관적인 근거라도 보여줘야 협의를 하는데 아직 그런 것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란에는 일반법 뿐 아니라 무슬림 율법인 '샤리아법'이 존재하는 등 안 그래도 법체계가 복잡한데, 최소한 어떤 법을 적용해서 배를 잡아뒀는지를 알려줘야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원들은 현지에서 변호사 선임도 못 하고 있다. 혁명수비대가 주도해서 선박을 억류하고 있다는 점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선사 관계자는 "보험사를 통해 다방면으로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지만, 혁명 수비대가 얽혀있는 걸 알면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만청, 어업국, 사법부 등 어디를 상대로 어떤 대응 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아 막막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란, 동결자금 문제 삼으며 '언론플레이'

이런 가운데 이란은 한국 내 동결자금을 문제 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만 현지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20일(현지시간) "한국이 미국의 명령을 받고 이란이 음식과 약을 살 돈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란은 동결자금으로 구급차 등 인도적 물품을 구매해 보내주는 방안 등에는 공개적으로 퇴짜를 놓았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였다는 게 외교부 측 설명이다. 
이란 정부 홈페이지에 20일(현지시간) 공개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의 한국 선박 관련 발언

이란 정부 홈페이지에 20일(현지시간) 공개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의 한국 선박 관련 발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또 17일(현지시간) 입장 발표를 통해 "한국에 동결된 우리 돈을 유엔 연회비 납부에 사용하는 방법을 유엔에 제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란이 회비를 못 내면서 유엔 투표권이 박탈될 처지에 놓였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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