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경제백신 딜레마···2086조 돈 살포냐, 공화당과 협치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통과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 통과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우선 입법 과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대신 경제부양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공화당이 경제부양책에 반대하며 ‘협치’와 ‘통합’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브라이언 디즈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24일(현지시간) 공화당 상원의원 8명을 포함한 16명의 상원의원과 회의를 열고 1조 9000억달러(약 2094조원) 규모의 ‘바이든표 구제법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백악관은 다음 달 8일 상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절차가 시작되기 전에 경제부양책부터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제 백신’은 취임 전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사안이다. 지난 14일 바이든 대통령은 “나라의 건강이 위험하다. 지금 행동해야 한다”며 1조 9000억달러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제안했다. 이 부양책엔 미국민 대부분이 받는 직접지원금을 2000달러(약 220만원)까지 증액하는 방안과 코로나19 백신 접종 지원책 등이 포함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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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자신의 잘못도 없이 직업과 존엄성을 잃었다"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자신의 잘못도 없이 직업과 존엄성을 잃었다"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공화당을 필두로 일부 상원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언론들은 상당수 공화당 의원들이 이미 지난해 12월 9000억달러(약 991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구제책을 통과시켰다며 이번 경제 부양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초당파로 분류되는 수잔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 정도 규모의 부양책을 고려하는 건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제안한 경기 부양책은 타깃이 적절하지 않다”며 “상원의원들은 이 부분을 지적했고, 행정부가 이를 잘 살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초당파 의원들의 리더격으로 분류되는 수잔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24일 백악관과의 회의를 앞두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AFP=연합뉴스]

초당파 의원들의 리더격으로 분류되는 수잔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24일 백악관과의 회의를 앞두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AFP=연합뉴스]

 
앵거스 킹 무소속 상원의원도 “이번 회의는 백악관과 상원이 앞으로 어떻게 코로나19 구제책을 만들어 나갈지 터놓고 논의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달러는 우리 손주들에게 빌려오는 돈이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일부 상원의원들은 공화당의 반발을 의식한 듯 대규모 부양책 대신 차라리 백신 공급 등 코로나19에 초점을 맞춘 ‘핀셋 부양’을 제시하고 있다. 진 샤힌 민주당 상원의원은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남은 논의의 시간이 많지 않다”며 “백신 캠페인 등에 집중한 구제 법안을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앞서 상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다음 달 8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는데, 상원이 탄핵 심판에 들어가면 다른 법안 논의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백악관은 이때문에 탄핵 절차에 들어가기 전 신속하게 경기 부양책을 의회가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합 외쳤는데… 백악관 딜레마

 
이번 부양책을 놓고 바이든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부양책을 원만하게 통과시키기 위해선 규모를 대폭 축소하거나,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기 위해선 공화당을 배제하는 당파적인 절차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통한 코로나 사태 해결을 강조해왔고, 동시에 분열을 넘어 협치와 통합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줄곧 말해왔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내 모든 영혼을 미국을 다시 통합하는 데 쓸 것"이라며 통합을 강조했

지난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내 모든 영혼을 미국을 다시 통합하는 데 쓸 것"이라며 통합을 강조했



원칙적으로는 입법 사안인 바이든표 경제 백신이 통과되기 위해선 공화당 상원의원 최소 10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과반수로 통과가 가능한 하원에선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힘만으로도 부양책 통과가 가능하지만, 상원에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지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60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50석 대 50석으로 범민주당과 공화당이 의석을 양분하고 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공화당 반대를 무력화하는 ‘예산 조정 절차’(budget reconciliation)가 있다. 이는 세입과 세출 관련 법안에 한해 단순다수결로 처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이 경우 상원의장인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 표를 더해 민주당의 힘만으로도 상원 통과가 가능하다.
 
예산 조정 절차 행사권을 가지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 예산위원장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부양책 통과에 몇 주, 몇 개월을 기다리는 것”이라며 “공화당이 바이든 대통령의 부양책에 반대하면 이 절차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무소속 상원의원은 "공화당원이 바이든 대통령의 부양책을 반대한다면 예산 조정 절차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면서 상원 예산위원장을 맡았다. [AP=연합뉴스]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무소속 상원의원은 "공화당원이 바이든 대통령의 부양책을 반대한다면 예산 조정 절차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되면서 상원 예산위원장을 맡았다. [AP=연합뉴스]

 
이에 WSJ은 “예산 조정 절차는 모든 정치적 도구 중 가장 편파적인 방법”이라며 “이번 부양책 통과는 협치의 워싱턴으로 돌아가겠다는 바이든 공약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바이든 대통령이 균형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공화당원 지지를 얻기 위해 부양책 규모를 줄이는 것은 진보 성향 의원들이 반대하고, 예산 조정 절차를 통해 강행하면 통합과 초당적인 결과를 추구하겠다는 자신의 공언이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