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경쟁상대는 야구장" 이랬던 정용진, 야구단 샀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4일 온라인 영상으로 2021년 신세계그룹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4일 온라인 영상으로 2021년 신세계그룹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판을 바꾸는 대담한 사고를 해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올해 신년사다. 정 부회장은 당시 “고객의 변화된 요구에 맞춰 광적인 집중을 해달라”며 “자신이 속한 사업만 바라보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나자”고 강조했다.
  

SK와이번스 '깜짝' 인수 왜? 

정 부회장이 연초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라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신세계그룹은 26일 "SK텔레콤의 SK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세계 이마트가 SK텔레콤이 보유한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한다는 내용이다. 인수 가격은 SK와이번스 주식 100만주(1000억원)와 야구연습장의 토지·건물(352억8000만원) 등 총 1352억8000만원. 신세계는 또 "야구단 연고지는 인천으로 유지하며 코치진·선수단·프런트 전원의 고용을 승계한다"고 했다. 다음 달 23일 본계약을 하고 구단 이름과 엠블럼, 캐릭터 등을 확정해 3월 중 공식 출범시킬 계획이다. 
 
신세계는 이날 SK와이번스 인수에 대해 “온·오프라인 통합과 온라인 시장 확장을 위해 몇 년 전부터 프로야구단 인수를 타진해왔다”며 “특히 기존 고객과 야구팬들의 교차점이나 공유 경험이 커 시너지가 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를 맞아 두꺼운 야구팬층이 온라인 시장의 주도적 고객층과 일치한다는 점도 주목했다고 했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통해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하고 26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3월에 새 구단이 정식 출범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통해 SK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하고 26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3월에 새 구단이 정식 출범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MZ세대 잡아라" 

정 부회장의 야구단 인수가 처음 공개된 후 유통가는 물론 프로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왜 이 시점에’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해 유통시장의 소비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만큼 정 부회장이 SSG(쓱)닷컴을 필두로 e커머스(전자상거래) 투자에 집중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온라인 강화 전략을 오프라인(야구단)에서 찾고 있다고 보고 있다. 프로야구 관중 주축은 20~30대이고, 최근엔 여성 관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신세계로선 쿠팡, 카카오 등 e커머스 업체에 뺏긴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 세대)를 미래 충성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이들이 향후 소비를 주도할 세대란 점에서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마트 유튜브 캡처]

[이마트 유튜브 캡처]

 
정 부회장이 MZ세대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지난해 연말부터 이마트 유튜브에 출연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요즘 젊은 고객들이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이마트 영업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부터 출연하겠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정 부회장의 출연 이후 이마트 유튜브 구독자는 2만여 명이 늘었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잡아라" 

신세계 내부에서는 프로야구단 인수는 정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야구장은 정 부회장이 유통업의 경쟁 상대로 수차례 거론한 곳이다. 그는 2016년 ‘스타필드 하남’ 개장식에서 “향후 유통업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세계의 한 임원은 “주말에 잠재적 고객을 흡인하는 야구장 등도 우리의 경쟁자라는 의미”라며 “실제 봄만 되면 스타필드 고객 수가 확 줄어든다. 그런 의미에서 유통업은 단순히 상품 판매가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라고 말했다. 쇼핑, 여가, 외식, 문화생활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게 유통업이 ‘라이프스타일센터’를 지향해야 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9일 202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중립경기가 열리는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찾은 야구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9일 2020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중립경기가 열리는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찾은 야구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재계 안팎에서는 1~2년 전부터 정 부회장이 프로 야구단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신세계의 다른 임원은 “올해 코로나19 종식에 맞춰 고객의 소비 욕구가 온라인 시장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오기 시작할 것”며 “정 부회장은 수 년 전부터 오프라인도 잘하는 온라인 기업을 말해왔고, 그게 현재 신세계의 지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에선 신세계가 야구장에 계열사 매장을 입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는 이날 “야구장을 찾는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해 ‘보는 야구’에서 ‘즐기는 야구’가 되도록 하겠다”며“야구장 밖에서도 ‘신세계의 팬’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마트는 이전에도 SK와이번스 홈구장에 ‘이마트 바비큐 존’ 등을 만들어 스포츠 마케팅을 선보였는데 앞으론 신세계그룹의 서비스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게 서비스를 보다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벌 롯데와 야구판에서 또 경쟁   

신세계의 야구단 인수로 롯데와 라이벌 구도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신세계, 롯데의 맞대결이 유통에 이어 야구판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부산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 구단을 보유하고 있다. 양 사 구단의 대결은 대중 관심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지난해 10월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롯데 자이언츠 경기. 6회 말 무사 1, 2루에서 롯데 이대호가 안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롯데 자이언츠 경기. 6회 말 무사 1, 2루에서 롯데 이대호가 안타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세계의 SK와이번스 인수는 스마트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작년 쿠팡으로 대변되는 e커머스가 급성장했다. 신세계로선 온라인 쇼핑몰에선 누릴 수 없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찾아내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세계는 이마트 매장에서 와이번스 선수의 사인볼을 파는 등 시너지 효과에 집중할 것”이라며 “롯데도 자이언츠와 연계를 늘리며 스포츠 마케팅 경쟁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세계에 프로 야구단을 넘긴 SK 입장에서는 그룹 내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가 몇 년 전부터 비주력 사업은 매각하고 있다”며 “특히 SK와이번스에 대해선 돈 먹는 하마라는 SK텔레콤 내부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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