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사는 게 울적하고 힘들다면…재래 시장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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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사진 윤경재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8) 

만약 사는 게 외롭고 힘들다면 살고자 애쓰는 삶의 현장으로 가서 그 사람들의 에너지에 몸을 맡겨보자. [사진 pixabay]

만약 사는 게 외롭고 힘들다면 살고자 애쓰는 삶의 현장으로 가서 그 사람들의 에너지에 몸을 맡겨보자. [사진 pixabay]

 
때때로 소래포구에 가보라
 
소래포구에선 입을 다물 수 없다
오늘은 물이 좋다며 어서 와
맘껏 골라보고 가라는 외침들
 
때를 낚던 낚시꾼도
짭조름한 해풍에 몸을 절여가며
섣부른 기다림을 꿰어
바지런히 바지랑대에 건다
 
절뚝이 사내는 지친 허물을 바닷물로 해감하고
모퉁이 좌판댁은 피조개를 다듬으며
껍질 속 비린 내장의 굴곡을
무심히 들여다본다
 
고향에 젖은 도요새만
펄 위에 시린 발을 묻는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바다는 여전히
목이 타는지 썰물을 들이마신다
 
해설
사는 게 울적하고 힘들 땐 왁자지껄한 재래시장에 나가 한 바퀴 둘러보면 어느새 마음이 풀리고 힘을 얻는다. 서울에서는 광장시장이나 남대문시장이 제격이다. 광장시장에서는 기름기 잘잘 흐르는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의 유혹을 떨칠 수 없다. 배가 출출하면 마약김밥집 앞을 그냥 지나칠 배짱이 사라진다. 가로에 어둠이 스며드는 저녁 무렵엔 말간 달걀노른자를 두른 육회무침 한 접시에 둘러앉아 쓴 소주를 털어 넣는 소리를 들어보자. 남대문시장 좌판 길에서 발을 구르며 손을 높여 박수치는 장사꾼의 외침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솟구친다.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는 방학동 재래시장 골목골목에는 끈 떨어진 생명을 이어붙이는 접착제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몸의 자세와 마음의 기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의기소침한 자세로 걸으면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기 쉽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발을 끌며 걷는다고 한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걷는 속도가 느리며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구부정하게 걷는다. 사람은 느끼는 방식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방식에 따라 감정을 느낀다. 이스라엘에는 ‘하바 나길라’라는 특유의 원무가 있다. 히브리어로 ‘우리 기뻐하자’는 뜻이다. 춤을 추면서 하늘로 뛰어오르는 수직 도약운동을 반복한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이 춤을 가르치고 함께 추었더니 증상이 줄어들고 삶의 활력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인간은 신체를 통해 생성된 좌표계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향을 가늠하고 확립한다. 그래서 ‘위’와 ‘아래’, ‘앞’과 ‘뒤’가 어딘지 구분한다. 이를 토대로 감정이나 도덕 등 추상적 개념을 공간적 좌표로 구체화해 이해한다. 또 자신의 동작과 타인의 행동을 보며 서로 맞추어 가려고 노력한다. 입꼬리를 위로 올리면 기분이 좋거나 환영하는 모습이며, 반대로 입꼬리를 내리면 지금 기분이 별로이니 알아서 맞추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입술을 삐죽 앞으로 내미는 것도 알아서 조심하라는 뜻이다.
 
얼굴 근육을 이용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표정과 감정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사진 unsplash]

얼굴 근육을 이용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표정과 감정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사진 unsplash]

 
사람의 얼굴 근육은 동물 가운데 가장 잘 발달되어 43개나 된다. 안면근육들을 사용해 무려 1만 가지나 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얼굴 근육을 이용하면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꿀 수도 있단다. 표정과 감정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감정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틱낫한 스님은 “행복해서 웃을 때도 있지만, 웃어서 행복해질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억지로 행복한 표정만을 지을 수 없는 것도 인간의 한계이다. 그러다가는 자기 안의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그림자가 폭발하고 만다. 그림자는 각자의 내면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어두운 부분이다. 이 그림자는 감정 에너지로서 작용한다. 에너지이기에 잘만 활용하면 창의적으로 발현하기도 한다. 화가나 예술가, 음악인들이 사회에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림자를 에너지로 써 창작 활동에 두각을 내는 경우기 많다. 악성 베토벤이 귀를 완전히 먹고 절대 침묵이라는 고통의 그림자를 합창 교향곡으로 승화한 사례는 본받을만한 귀감이다.
 
많은 경우 개인이나 집단에 드리운 그림자가 쌓여 잘못 발휘된다. 특히 타인이나 소수의 힘없는 집단에 화살을 향하게 되는데 그런 걸 ‘투사’라고 부른다. 자신과 자기 집단이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화살을 남에게 돌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지역갈등이나 텃세이다.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번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자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그리됐다고 누명을 씌워 학살한 사건이나,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열등한 민족이라며 유대인과 집시를 집단학살한 것도 투사의 나쁜 예이다.
 
결정을 내려야 할 위치에서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게 싫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회피도 투사 못지않은 잘못된 행동이다. [사진 pixabay]

결정을 내려야 할 위치에서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게 싫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회피도 투사 못지않은 잘못된 행동이다. [사진 pixabay]

 
개인적으로 잘못된 그림자의 투사는 아동학대와 나름대로 권력을 쥔 사람들이 저지르는 성폭력 사건에서 나타난다. 자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약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듯 해소하려는 착각에서 벌어진 악행이다. 이런 행태를 예방하려면 어두운 그림자를 적절히 해소하고 의식세계로 떠올려 통합하려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평소에 자기 가치관과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 미술품 등을 접하거나 적당히 육체적이고 폭력적인 운동을 보거나 직접 하는 걸 통해 억눌린 그림자를 풀어주는 게 좋다. ‘붉은 악마’와 같은 단체응원도 선의의 투사 행위이다.
 
또 회피도 그림자의 폐해이다. 결정을 내려야 할 위치에서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게 싫어서 미적미적 침묵으로 일관하는 회피도 투사 못지않은 잘못된 행동이다. 자기는 늘 착한 얼굴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악역은 아랫사람을 시키거나, 뒤늦게 사태를 얼버무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일수록 편 가르기를 통해 자기는 좋은 사람이라는 허명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솔직하지 못한 일종의 강박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동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오, 복된 탓이여”라고 고백했다. 이 말의 뜻은 죄를 짓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 안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타인에게 투사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만약 사는 게 외롭고 힘들다면 살고자 애쓰는 삶의 현장으로 가서 그 사람들의 에너지에 몸을 맡겨보자. 인간의 뇌에는 거울 뉴런이 있어 금세 그 힘에 동화될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두더지 잡기 오락이나 야구방망이 휘두르기를 해도 좋다. 아니면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라도 박박 찢어보던가. 그림자가 무서운 건 다음 세대로 대물림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 자기 선에서 미리미리 통합하고 드러내어 해소하여야 한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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