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의 전설 카스파로프 푸틴 공격 전면에…"측근들 제재하라"

 
세계 체스 챔피언 출신 가리 카스파로프. 그는 최근 알렉세이 나발니의 구금에 반대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비판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체스 챔피언 출신 가리 카스파로프. 그는 최근 알렉세이 나발니의 구금에 반대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비판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체스 챔피언’ 출신 가리 카스파로프(58)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비판에 나섰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45)의 독살시도 및 구금 사건을 문제 삼으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게 ‘친 푸틴’ 인물을 제재해달라고 촉구했다. 
 
영국 가디언은 27일(현지시간) 카스파로프가 존슨 총리에게 “푸틴 대통령 측근에게 경제 제재를 가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푸틴의 내부 세력에 대항할 독특한 위치에 있다”며 “현재 러시아에선 크렘린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러시아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카스파로프가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세력은 이른바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러시아의 부유층 중 ‘푸틴계’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올리가르히는 고대 그리스의 ‘과두 정치(소수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올리가키(oligarch)’의 러시아 표현이다. 이들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붕괴한 뒤, 주요 국영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알짜 회사를 헐값에 인수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횡행했다. 이들 중 일부는 개혁을 추진하는 푸틴에 의해 숙청됐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러시아 정치·경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27일 러시아 야당 의원들은 나발니가 수년 전부터 지목해온 8명의 올리가르히에 대해 제재를 영국에 요구했다. 여기엔 영국 프로축구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아스날의 대주주인 알리셰르 우스마노프 등이 포함됐다.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친 푸틴' 올리가르히로 꼽힌다. [EPA=연합뉴스]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친 푸틴' 올리가르히로 꼽힌다.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0월, 나발니 암살 시도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러시아 고위관리 6명 등에 대해 ‘EU 입국 금지 및 자산 동결’ 조치를 내렸다. 또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했다. 조치 대상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국장과 세르게이 키리옌코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 국방부 차관 2명 등 ‘푸틴파’로 불리는 관리 5명이 포함됐다. 이때 영국도 제재에 동참했다.
 
카스파로프는 “(영국에 인맥이 있는) 측근들의 돈이 런던으로 계속 흘러 들어가는 한 푸틴 권력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하원 정보안보위원회(ISC)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머니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 영국에 대거 유입됐다. 보고서엔 “주택 등에 관련 돈이 들어와도 출처를 입증하라는 요구가 거의 없었다”며 “이로 인해 푸틴 대통령의 측근도 쉽게 영국 사회로 들어오고 있다”고 돼 있다. 이어 영국 정치권에선 장관 6명 등 내각 인사 14명이 친러시아계 기업으로부터 수만 파운드 상당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게 알려져 파문도 일었다.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인간vs컴퓨터간 체스대회에 나서기도 했다.중앙포토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인간vs컴퓨터간 체스대회에 나서기도 했다.중앙포토

 
 카스파로프는 1963년 소비에트 연방 아제르바이잔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체스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10세에 러시아 체스 챔피언 미하일 보트비닉의 제자가 됐다. 청출어람의 실력으로 1985년부터 2000년까지 16년간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2005년 은퇴한 뒤엔 정계에 뛰어들어 2007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왔기 때문에 독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고백한 뒤 2014년 크로아티아로 국적을 바꿨다.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보육원에서 자란 체스 신동의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보육원에서 자란 체스 신동의 이야기를 다뤘다. [넷플릭스 제공]

 
그는 최근 유명 넷플릭스 시리즈 ‘퀸스 갬빗’을 자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보육원에서 자란 ‘체스 신동’의 이야기인 퀸스 갬빗은 “현실을 잘 반영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카스파로프는 “1960년대 소련의 체스 챔피언들은 가족과 여행을 갈 때도 KGB(국가보안위원회)와 동행해야 했다”고 미국 매체 슬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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