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누구를 위한 ‘공돈’의 유혹인가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한국만큼 대통령 권력이 센 나라가 없다. 우리 법률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표현이 부지기수다. 너무 많아서일까, 대통령령이 모두 몇 개라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냥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의 법률 구조 자체가 임금님 어명처럼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5년 단임제 이후 단기 성과에 급급해지면서 대통령 권력은 더 강하게 행사된다.
 
그러다 보니 불행한 일이 자꾸 벌어진다. 적폐의 낙인이 찍힌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감옥에 간 것도 제왕적 권력의 폐해였다.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못하는 일이 없어진다. 특히 기업은 완전히 봉이 된다. 전두환 정권 때는 기업을 압박해 노골적으로 통치자금을 거둬들였다. 노태우 정권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선 기업을 압박해 결국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 권력이 막강한 탓일 터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위로 지원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대통령이 왕처럼 국민에게 위로금을 준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대 어느 대통령도 위로금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돈을 지급한 전례가 없다. 이건 분명히 개인 돈이 아니라 나랏돈을 지급한다는 취지였을 텐데, 역사책이나 외국에서도 전 국민 위로금 지급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자들이 나랏돈을 나눠준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 충격이 본격화한 지난해 4월 총선 이후부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느닷없이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할인을 제안하더니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아동수당 18세 확대 방안까지, 나랏돈을 나눠주는 정책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더 과감하다. 경기도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두 차례나 지급했고, 지역 화폐도 발행했다. 더 나아가 선진국에서도 보기 드문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너무 나가다 보니 여권의 핵심 인사들이 이슈의 주도권을 빼앗길세라 견제에 나설 정도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아무리 좋은 것도 때가 맞아야 한다”고 했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무조건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붓는 것으로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작심 비판했다. 이낙연 대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 더 드리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 많은 쟁점이 있다”며 견제했다. 논쟁으로 보이지만, 여권의 포퓰리즘 경쟁이라는 기본 구도는 그대로다.
 
재난지원금은 전가의 보도가 됐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우리 고민정 후보 뽑아주면 전 국민에게 4인 가족 100만원 지원하겠다’는 공약은 현실이 됐다. 당시 국민의 99.5%가 받아들였다. ‘돈 싫다는 사람 없다’는 세상 이치를 확인해줬다. 선거를 앞두고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권 주자들이 온갖 명목으로 ‘코로나 지원금’을 나눠줄 명분을 찾고 있는 이유가 아니겠나. 그러니 아직 3차 재난지원금 집행도 안 끝났는데 20조원 규모의 4차 지원금이 준비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은 전 국민 위로금 검토까지 약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가. 거듭되는 나랏돈 살포는 코로나 충격과 맞물려 분배를 악화하고 있다. 그래도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겨냥한 돈 뿌리기 경쟁은 그칠 조짐이 없다. 국민은 결국 돈 살포 공세를 막아낼 힘이 없다. 다만 세 가지를 기억하자. 무차별로 뿌리는 그 돈을 받게 되면 나랏빚은 더 늘고, 분배 악화는 심해지며, 그 재원은 결국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사실이다. 돈을 받아도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얘기다.
 
이 웃픈 현실이 공돈의 유혹에 숨은 핵심 코드가 아닐까 싶다. 정치인들도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재정이 화수분이 아닌데 언제까지 포퓰리즘을 동원할 수 있다고 보나. 부디 지원금은 취약계층에게 집중하고, 기업 투자와 고용 활성화처럼 민생을 살리는 근본 대책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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