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하고 싶은 일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1970년대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 온 국민이 TV 앞에 앉아 응원을 했다. 플레이가 잘 안 풀리면 흥분하고 상대 국가팀이 반칙이라도 하면 욕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면서 심판 안 볼 때 우리도 반칙하라고 목청을 높이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에서 지면 심판의 편파적 경기운영 때문에 우리가 졌다고 억울해 했다.
 
이제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 보는 우리들은 반칙을 해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버렸다. 박수를 받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플레이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면 된다. 프로의 세계가 아름다운 것은 이기려고 하는 마음보다 잘 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야당을 끌어안아 소통하고, 인재를 두루 기용하고, 지나간 잘못을 모두 청산하고, 정책과정에 국민을 참여시키며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국민도 이를 보고 환호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
 
많은 실험들이 있었다. 원자력문제나 입시문제를 숙의민주주의로 풀려고 한 것도 그 한 예다. 교육전문가는 배제한 채 법조인 위원장과 장삼이사들이 모여 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간 숙의를 했다. 마치 미국에서 엽관제가 팽배할 때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측근들을 무리하게 중용하면서 행정이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같다. 하지만 숙의를 통해 제대로 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사태 이후 대통령이 입시의 공정성을 강조한다면서 수능으로 40% 입시를 치루라는 이야기가 모범답안이 되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고려해야할 변수가 상상외로 복잡하고 정책집행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문제를 고민해온 전문가들이 치밀한 분석과 토론과 협의를 통해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원리는 삼권분립이다.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세 권력이 철저하게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입법권이 유권자의 선출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면 사법권과 행정권은 전문성으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사법권과 행정권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원로 행정학자 김영평 교수 등이 펴낸 『민주주의는 만능인가?』는 직접 민주주의를 절대시하는 최근 추세를 비판한다. 고위관료와 판검사들도 공정한 국가고시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행정권과 사법권을 집행하도록 권력을 부여받은 것이다. 입법, 행정, 사법이 각자의 의무와 권리를 갖고 상호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이다. 사법과 행정의 영역에 정치가 개입하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 선출권력만이 민주주의를 대표한다고 독주하면서 포퓰리즘 수법으로 군중을 동원할 때 민주주의는 왜곡된다.
 
스페인계 유태인으로서 나치 치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리아스 카네티는 평생 동안 군중의 행동양식을 연구한 역저 『군중과 권력』에서 권력자들은 쉽고 완벽하게 군중을 이용한다고 했다. 로마군이 유대를 침공했을 때 갈릴리 사령관인 요세프스가 자결을 권하는 부하들에게 제비뽑기를 제안하여 결국 자신만 마지막에 살아남은 예를 들면서 권력자는 살아남기 위해 군중들에게 완벽한 속임수를 쓴다고 간파했다.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이제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입법부의 권한도 통제될 필요가 있다. 의원내각제도 아닌데 국회의원들이 장관직을 다수 차지하는 것이 대통령제의 삼권분립 원칙에 맞는 것인가? 최근 재정 전문성도 없는 통일부장관과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국회의원 자격으로 국회에서 기재위원으로 보임되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장관이 국회 상임위원이 되는 것을 보며 선수 심판론이 떠오른다.
 
지역구 예산과 다음 공천을 따내기 위해 열심당원과 당지도부의 눈치를 살피며 막말을 일삼는 선출직 국회의원보다 국가의 곳간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비난을 감수하는 기재부의 젊은 전문직 사무관이 국민과 나라의 앞날을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전문성으로 정치권과 입법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중심을 잡을 때 비로소 국민들은 안심할 수 있다. 정치권은 『민주주의는 만능인가?』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이 자기절제와 겸손에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좌파 정부가 되었건 우파 정부가 되었건 정권을 잡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만용은 버려야 한다. 하고 싶다고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면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고 집행은 왜곡된다. 이제 정치권의 무리한 개혁 드라이브로 행정부와 사법부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침해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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