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美텍사스, 불빛 환한 집 한채…SNS서 난리난 'ESS'

미국 텍사스 주에 찾아온 겨울 폭풍으로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하지만 가정용 ESS를 설치한 주택은 대규모 블랙아웃을 피할 수 있었다. [사진 트위터 캡쳐]

미국 텍사스 주에 찾아온 겨울 폭풍으로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하지만 가정용 ESS를 설치한 주택은 대규모 블랙아웃을 피할 수 있었다. [사진 트위터 캡쳐]

# 사방이 깜깜하다. 겨울 폭풍이 찾아온 미국 텍사스 주는 가로등 불빛마저 사라졌다. 암흑으로 변한 주택가 한쪽에 블랙아웃을 이겨낸 주택 한 채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집 안 전등은 물론이고 출입문 앞도 환하다. 테슬라의 주택용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한 주택이다. ESS로 블랙아웃을 이겨낸 13초가량의 짧은 영상은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겨울 폭풍 속 ESS 활약상을 전했다. 겨울 폭풍이 지난 후 ESS와 연료전지 관련 주식은 크게 올랐다.
 
미국·유럽의 ESS 산업은 성장 국면에 들어섰지만 국내는 상황이 정반대다. ESS 건설 발주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끊겨 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ESS 사업을 하는 한 대기업 영업팀장은 “발주만 놓고 보면 ESS 산업이 태동하던 2014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며 “산업 기반이 오늘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전했다. 운영 자금에서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은 사정이 더 나쁘다. ESS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대표는 “재고는 쌓여있지만, 발주가 없어 회사 운영 자금도 동이 난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현대자동차의 출고차 주차장에 건설 중인 태양광 발전단지.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이 현대자동차의 출고차 주차장에 건설 중인 태양광 발전단지.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ESS협회 꾸려 집단행동 돌입

고사 직전에 놓인 ESS 사업자는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협회를 꾸려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한국ESS협회는 지난달 20일 창립총회를 열고 정부에 산업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30여개 중소기업이 참여한 ESS협회는 선언문에서 “파산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항할 것”이라며 “정부가 ESS 우대정책으로 유혹한 뒤 화재 위험을 빌미로 찬밥 대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SS는 201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유력 산업군으로 주목받았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ESS 사업장에서 30건에 가까운 화재가 이어지면서 2019년 하반기부터 사실상 멈춰섰다. 사업장 건설 공사 발주가 사라졌고, 보험사마저 ESS 관련 보험 상품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한국 ESS 시장은 한때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관련 산업을 이끌었으나 지금은 아니다”며 “치고 나가야 할 시점인데 한국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SS 화재 이후 정부 산업 지원 끊겨

관련 산업이 멈춘 건 화재 원인 규명과 관련이 있다. 정부는 ESS 화재가 잇따르자 두 차례 조사를 진행했다. 1년 가까운 조사에도 정부는 화재 원인을 콕 짚어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ESS 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은 끊어졌다. 예산 지원은 일몰제를 이유로 연장되지 않았다. 한창 성장하던 산업은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 의지에 멈춰섰다. 
 
해외는 정반대다.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는 글로벌 ESS 시장이 2018년 11.6GWh(기가와트시) 규모에서 2025년 86.9GWh로 연평균 3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주도하는 건 테슬라 등 해외 기업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2020년 4분기 테슬라 ESS 설치량은 1.6GWh로 대폭 성장했다”며 “테슬라 메가팩과 가정용 파워월 설치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ESS 산업이 최근 더 주목받고 있는 건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를 ESS 배터리로 재사용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ESS가 친환경 에너지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필수 사업군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승일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ESS는 필요가 아니라 필수”라며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힘을 주면서 ESS를 포기한 건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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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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