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 대통령' 룰라의 대반전…대선 주요 변수로 컴백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실형이 모두 무효 판결됐다. 중앙포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실형이 모두 무효 판결됐다. 중앙포토

 
뇌물 수수 혐의로 수감됐던 ‘좌파의 아이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5) 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해 대법원이 8일(현지시간) 기존의 유죄 판결을 뒤집었다. 이 판결로 그는 내년 대통령 선거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가디언·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브라질 연방 대법원의 에드송 파친 대법관은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해 원심의 유죄 판결을 모두 무효 판결했다. “쿠리치바 법원의 (원심) 판결이 적절치 않았다”며 “수도 브라질리아 연방 법원에서 재심을 받아야 한다”게 판결 내용이다.
 
룰라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2009년, 한 대형 건설회사가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계약을 따도록 도와주고 그 대가로 370만헤알(약 7억2000만원) 상당의 고급 아파트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2014년 수사가 시작됐고, 3년 만인 2017년 1심에서 징역 9년6월, 이듬해 2심에서 징역 12년1월을 선고받았다.
 
세르지오 모루 전 브라질 법무장관. 그는 연방 판사 시절 수사 담당 검사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EPA=연합뉴스

세르지오 모루 전 브라질 법무장관. 그는 연방 판사 시절 수사 담당 검사에게 수사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EPA=연합뉴스

 
반전이 일어난 건 2019년 6월, 수사 검사와 판사 간의 담합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당시 ‘인터셉트 브라질’이라는 웹사이트에 세르지우 모루 당시 법무장관의 연방 판사 시절 문자 메시지 등이 공개됐다. 인터셉트 브라질은 모루 전 장관이 검사들에게 유죄 판결 및 구속을 위해 도움을 준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모루 전 장관은 부인했지만, 상황은 룰라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고, 결국 연방 대법원도 원심판결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룰라 전 대통령이 피선거권을 회복하게 되면서 브라질 정계는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룰라의 ‘출마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내년 대선판에서도 통할지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디언은 브라질의 정치 평론가 토마스 트라우만을 인용해 “대통령 선거는 (유죄 무효 판결이 나온)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며 “룰라가 후보로 안 나온다?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선에 성공해 2003~2010년 브라질을 통치한 룰라는 퇴임 당시 지지율이 83%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선거에 출마할 경우, 극우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에 대적할 사실상 유력한 후보로 점쳐진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브라질 정치 컨설팅 회사인 이펙(IPEC)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예상 득표율 50%로 보우소나루 대통령(38%)를 앞질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제38대 브라질 대통령. EPA=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제38대 브라질 대통령. EPA=연합뉴스

 
룰라 전 대통령이 국민의 사랑을 받은 건, 집권 기간 브라질 경제가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4% 이상을 기록했고, 브라질은 경제 규모 세계 7위에 올랐다. 그는 빈곤층에 식량을 공급하는 ‘포미 제로(Fome Zero)’ 정책 등 강력한 복지 정책을 펼쳐 2000년대 초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과 함께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좌파 물결)’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퇴임 뒤 부정적인 평가도 따랐다. 그의 집권기에 세계적으로 원자재 수요가 폭발해 꼭 룰라가 아니었어도 자원이 풍부한 브라질로선 부유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후 국제 경기가 침체되고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면서, 결과적으로 브라질 정부가 복지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게 했다는 평도 받았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룰라는 사실상 홀어머니 손에 컸다. 7세 때부터 집안의 생계를 위해 땅콩 팔이, 구두닦이 등으로 일했던 그는 14세에 금속 공장에 취직했다. 18세에 불의의 사고로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고, 공장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이 임신한 채로 간염에 걸려 뱃속 아기와 함께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금속노조 위원장을 맡으면서 노동 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정치판에 뛰어들어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2003년, 제35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