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냐 노비냐"···7월 출범 자치경찰, 전국 곳곳 파열음

“자치입법권 훼손” VS “경찰 패싱 안돼”

지난달 29일 충북 경찰공무원 직장협의회 소속 함의현(56) 경위가 충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달 29일 충북 경찰공무원 직장협의회 소속 함의현(56) 경위가 충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8일 오전 충북 청주시 충북도청 정문 앞. 청주상당경찰서 소속 김원준 경사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자치경찰을 원하는 것이냐. 자치노비를 원하는 것이냐’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채로다. 김 경사를 비롯한 충북 경찰공무원 직장협의회는 열흘 넘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 경사 등은 “자치경찰과 관련한 사무를 변경할 때는 반드시 경찰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치경찰 사무변경 시 지자체가 경찰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취지로 충북도가 입법예고한 자치경찰 조례안을 놓고는 충북 경찰 2200여명이 이미 반대 의견을 낸 상태다.
 
오는 7월 자치경찰제 도입을 앞두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간 파열음이 곳곳에서 나온다. 자치경찰을 지휘·감독할 자치경찰위원장이 물의를 빚고 사퇴하는가 하면 위원 선임을 놓고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지역도 있다.

 

“들어야 한다” VS “들을 수 있다”…서울·충북 ‘4글자’논쟁

지난달 29일 청주시 청원구 충북경찰청에 입법예고 된 자치경찰제 운영 조례안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청주시 청원구 충북경찰청에 입법예고 된 자치경찰제 운영 조례안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자치경찰제는 기존 경찰청이 맡던 생활안전·교통·경비 업무를 지자체가 담당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관련법 개정으로 지역마다 조례를 만들어 시행에 들어간다. 경찰청은 시행 초기 혼란을 막기 위해 지난 2월 자치경찰 운영을 위한 ‘경찰청 표준 조례안’을 내놨지만, 특정 조항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표준 조례안에서 논란이 된 조항은 자치경찰사무범위 조정에 따른 ‘경찰 의견 청취’ 규정이다. 경찰청의 표준 조례안 2조 2항에는 “생활안전·교통·경비 관련 자치경찰 사무의 구체적 사항과 범위를 정하거나 바꿀 때 광역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강행 규정을 뒀다. 자치경찰 업무를 조정할 때 해당 지방 경찰청장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충북의 경우는 “자치입법권에 위배된다”며 이를 거부했다. 지난달 23일 충북도가 입법예고한 자치경찰 조례안 2조 2항에는 ‘도지사가 자치경찰 사무를 바꾸고 싶을 때 충북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쓰여있다. 경찰 의견을 참고만하겠다는 뜻이다. 오세동 충북도 행정국장은 “지방경찰청장 의견 청취를 필수 조건으로 할 경우 자치경찰 사무를 지역 여건에 맞게 바꾸려 해도 경찰이 반대하면 고칠 수 없게돼 지자체 재량권이나 자치입법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현장 책임자가 자치경찰위원 후보로 

서울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자치경찰 조례안' 수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경찰의 사전 협의 없이 지자체 업무가 경찰로 전가될 우려가 있어 긴급신고 출동의 인력부족으로 치안공백이" 우려 된다며 조례안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스1]

서울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자치경찰 조례안' 수정을 요구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경찰의 사전 협의 없이 지자체 업무가 경찰로 전가될 우려가 있어 긴급신고 출동의 인력부족으로 치안공백이" 우려 된다며 조례안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스1]

 
인천에서도 자치입법권을 이유로 시의회가 이를 임의규정으로 수정하려다 경찰 등이 반발하자 “경찰과 협의 절차를 거친다”는 원안을 의결했다. 강원에서는 “협의하여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제주도의회는 논란 끝에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를 ‘청취해야 한다’로 의무화했다. 
 
자치경찰 예산 지원에 관한 표준 조례안 14조도 논란이다. 경찰청 안은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경찰공무원과 자치경찰 사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 예산 범위에서 복지·처우를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와 충북은 지원 대상을 ‘사무국’으로 한정했다. 임경근 충북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단 계장은 “2200여 명의 지구대·파출소 직원을 배제한 채 사무국 소속 경찰관 10여 명만 챙긴다면 누가 자치경찰을 자처하겠냐”고 따졌다.
 

전문가 “자치경찰 관할 주체 모호…예산 분담도 협의해야”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2회 국회 제15차 본회의에서 경찰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2회 국회 제15차 본회의에서 경찰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조례를 일찌감치 제정하고도 자치경찰위원회 운영에 차질을 빚는 곳도 있다. 충남에서는 자치경찰위원장 A씨(72)가 천안의 한 파출소를 찾아가 경찰관과 언쟁을 벌인 사건으로 지난 5일 물러났다. 인천의 시민단체는 인천자치경찰위원 후보인 B씨(67)를 놓고 “2009년 용산참사 때 진압 작전을 총괄한 현장 책임자로 밝혀져 임명을 취소해야 한다”며 임명권자인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자치경찰제는 자치경찰 사무를 관할하는 주체가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양영철 한국지방자치경찰정책연구원장은 “자치경찰제가 도입되더라도 경찰 업무를 집행하는 기관은 여전히 경찰서, 지구대·파출소 경찰관 등이 담당하는 구조여서 영역다툼이 있는 것 같다”며 “자치경찰 사무 비용 역시 국가와 지방이 얼마나 낼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예산 분담에 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주성 창원대 교수(법학과)는 “(시행 초기인 만큼) 경찰과 자치단체가 각자 조직 논리를 앞세워 자존심 싸움을 하기보다는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주·홍성·인천·제주·춘천=최종권·신진호·최모란·최충일·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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