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극찬한 『파친코』···그 한국계 작가에 영감 준 웨이터 삼촌

민진 리(Min Jin Lee, 이민진)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Min Jin Lee 홈페이지]

민진 리(Min Jin Lee, 이민진)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Min Jin Lee 홈페이지]

 
첫 문장을 쓰는 건 어떤 글이든 어렵다. ‘첫 문장 쓰는 법’으로 구글링을 하면 많이 등장하는 소설가 중 하나가 한국계 미국인, 민진 리(Min Jin Leeㆍ이민진) 작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천했던 영어 소설 『파친코』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첫 문장은 유독 유명하다. 전자는 “역사는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후자는 “능력이 있다는 건 저주일 수 있다(Competence can be a curse)”로 시작한다.  
 
뉴욕타임스(NYT) 북섹션은 지난 7일(현지시간) 그의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한 해를 나는 (뉴욕) 할렘의 외풍이 심한 내 방에서 거의 다 보냈는데, 남향 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거로 봐서 날씨가 나쁘다는 걸 짐작하곤 했다.” 작가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격리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내에 격리된 생활 속에서 쓴 글이어서다. 코로나19가 작가의 작품세계에도 미친 영향이 지대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민진 리가 코로나19를 두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절망 아닌 희망이다. 자전적 소설에 능한 그답게, 그는 이번 NYT 기고문 역시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유명을 달리한 삼촌의 이야기로 운을 뗐다. 존 Y 김이라는 이름의 그는 6ㆍ25 후 도미했다. 웨이터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음식을 나르고 치우는 그는 항상 배가 고팠다. 민진 리는 “삼촌은 손님이 남긴 음식에 손을 대면 해고할 거라는 협박을 받곤 했다”며 “웨이터들에겐 식사가 제공되지 않았지만, 열심히 돈을 벌었다”고 전했다. 그런 삼촌이 위안을 찾은 곳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소설 『파친코』의 영문 원서와 번역본.

소설 『파친코』의 영문 원서와 번역본.

 
그곳에서 그는 컴퓨터공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정보기술에 눈을 떴고, 결국 IBM에 입사하게 됐다고 한다. 민진 리와 같은 조카들이 미국에 막 도착하자 삼촌이 처음 데리고 간 곳도 도서관이었다. 민진 리가 미국에 당도한 것은 7살 때였다. 부모님은 생계를 꾸리느라 거의 항상 일을 했고, 그는 말이 통하지 않아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삼촌처럼 그는 도서관에서 마음의 양식을 찾았다고 한다. 자신처럼 이민자인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고, 다양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으며 점차 영어 실력도 좋아졌고 미국 생활에도 적응했다. 더불어 작가라는 평생의 꿈도 이루게 됐다.  
 
민진 리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명문 로스쿨을 졸업한 뒤 로펌에서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표를 냈다. 시간당 페이를 300달러(약 33만원)까지 받을 정도로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더 못하겠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자전적 이야기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에 담았다. 부모님 희망대로 콜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꿈을 찾아 작가가 되는 여성 주인공의 스토리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 이 작품의 시리즈화를 발표했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 『파친코』 역시 이민호 배우를 포함한 한ㆍ일 다국적 캐스팅으로 극화될 예정이다. 일제 강점기 부산 영도에서부터 일본으로 건너간 한인들의 강인한 삶을 그렸다. 민진 리가 일본 지사에 발령받은 변호사 남편을 따라 도쿄에서 살면서 자료조사를 해가며 쓴 생생한 디테일이 녹아있다.  
 
영상화되는 『파친코』캐스팅. [할리우드 리포터 캡처]

영상화되는 『파친코』캐스팅. [할리우드 리포터 캡처]

 
작가로서의 민진 리를 만든 건 그의 삼촌 존 Y 김이다. 민진 리는 NYT 기고문에서 “삼촌이 젊은 시절 도서관을 찾아 신문을 집어들고 책을 빌리는 모습을 상상한다”며 “그렇게 그는 인생의 문제를 풀고, 우리를 구원한다”고 적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코로나19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되고 인간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는 “내 삼촌이 돌아가셨으니 슬픔은 계속된다”면서도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지금은 엉망이지만 더 나아질 거다. 당신은 강인해. 우리는 헤쳐나갈 것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