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랑한다" 서해안 슈바이처, 30년 뒤 흙으로 돌아온 사연

1980년대 최분도 신부(오른쪽)와 입양을 앞둔 혼혈아동. 사진 인수호씨 제공

1980년대 최분도 신부(오른쪽)와 입양을 앞둔 혼혈아동. 사진 인수호씨 제공

1990년 2월 김포공항.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50대 미국인 신부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탑승시간이 되자 고인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30년간의 한국생활을 마무리하는 그는 “고향인 미국보다 한국 땅과 사람들을 더 사랑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나중에 꼭 한국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평소 외방선교 사제가 고국(미국)에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하던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 2001년 봄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고국 교회에 묻혔다. 한국에서 ‘서해안 슈바이처’라 불리던 고(故) 최분도(1932~2001) 신부 얘기다.
 

섬사람 위해 병원선 만든 ‘슈바이처’

최분도신부와 진료를 함께 했던 수상병원 바다의별. 사진 인수호씨 제공

최분도신부와 진료를 함께 했던 수상병원 바다의별. 사진 인수호씨 제공

최분도 신부는 20대이던 1959년 가을 외방선교회 사제로 한국에 왔다. 둘째 형에게 듣기만 했던 한국과의 첫 만남이었다. 형 메달도 즈웨버는 미 8군 복무 시절 한강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던 두 한국 소년을 구출한 의인이었다. 1962년 최분도 신부는 연평도 본당 주임을 맡았다. 서해 22개 공소(성당)를 관할하는 자리였다. 섬지역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녹록지 않았던 그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형이 못다 한 사랑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주민들에게 다가서고자 본명인 베네딕토를 한자로 음차한 분도(芬道)라는 이름을 썼다. 사제복을 벗은 채 볏단을 가득 실은 지게를 졌다. 
고 최분도 신부 무덤의 흙이 뿌려진 고 서재송씨 무덤이 있는 덕적도 서포리 동산. 사진 인수호씨 제공

고 최분도 신부 무덤의 흙이 뿌려진 고 서재송씨 무덤이 있는 덕적도 서포리 동산. 사진 인수호씨 제공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에 사는 환자들이 늘 안타까웠던 최분도 신부는 오래된 미군 함정을 사 ‘병원선’으로 개조했다. 수상병원 ‘바다의 별’이 탄생한 순간이다. 의사·간호사와 함께 바다의 별을 타고 서해 여러 섬을 오가며 진료했다. 덕적도에는 복자 유베드로 병원을 만들기도 했다. 병원은 북새통을 이뤘고, 그는 수술이 필요한 이들을 미국으로 보내 치료받을 수 있게 돕기도 했다. 갈 곳 없는 혼혈아동을 위해 해외입양도 주선했다.
 
그런 공로로 197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그를 주민들은 ‘서해안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그의 헌신이 녹아있는 덕적도엔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가 남아 있다.
 

20년 만에 ‘고향’ 바닷가로 돌아오다

 덕적도에는 주민들이 세운 최분도 신부의 공덕비가 있다. 사진 인수호씨 제공

덕적도에는 주민들이 세운 최분도 신부의 공덕비가 있다. 사진 인수호씨 제공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한국을 그리워하던 최 신부의 마지막 소망이 최근 이뤄졌다. 천주교 인천교구 등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최 신부의 서품 동기 신부들은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 본부에서 서품 60주년을 기념하면서 “늦었지만, 최 신부의 소망을 들어주자”며 최 신부 무덤에서 흙을 퍼낸 뒤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한국에서 사역하던 로베르토 신부가 흙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지난 1월 말 덕적도 주민들 앞에서 흙 일부를 인천 덕적도 서포리 바닷가 동산에 뿌렸다. 고인의 평생지기인 故 서재송씨 부부의 무덤이 있는 곳이자 최 신부가 생전 묻히길 바랐던 장소였다.
미국에 있는 최분도 신부의 무덤에서 퍼온 흙의 일부가 그가 사역하던 인천 덕적도 서포리 해안가 동산에 뿌려졌다. 사진 인수호씨 제공

미국에 있는 최분도 신부의 무덤에서 퍼온 흙의 일부가 그가 사역하던 인천 덕적도 서포리 해안가 동산에 뿌려졌다. 사진 인수호씨 제공

이 애틋한 사연은 지난달 26일 최 신부 선종 20주기 추모 미사에서 서재송씨의 조카 인수호(65)씨가 공개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바닷가 동산에 뿌리고 남은 흙은 덕적도에 최 신부의 추모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보관할 예정이다. 인씨는 “신부님 사역 동지였던 서재송씨 부부와 영원히 함께하길 기원하며 흙을 뿌렸다”며 “투병 중에도 한국에 가고 싶어했던 신부님의 일부라도 바라시던 데로 한국에 잠들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