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곽두팔 다시 불러냈다, 김태현이 만든 '택배 포비아'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사건 당일인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PC방을 나서고 있다. 이 PC방은 피해자 중 큰딸이 종종 방문하던 곳으로 이곳을 찾은 김씨는 게임은 하지 않고 약 13분 동안 머문 뒤 피해자의 주거지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독자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사건 당일인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PC방을 나서고 있다. 이 PC방은 피해자 중 큰딸이 종종 방문하던 곳으로 이곳을 찾은 김씨는 게임은 하지 않고 약 13분 동안 머문 뒤 피해자의 주거지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독자

 ‘택배 포비아(phobia·공포증)’가 이삼십대 여성을 덮쳤다. 노원구 세 모녀 사건 피의자인 김태현(25)이 택배 송장을 통해 피해자의 주소를 얻고, 택배 퀵 배달을 사칭하면서다. 김태현은 피해자 A씨의 SNS에 올라온 사진 속 택배 송장을 통해 주거지를 파악했고 스토킹을 시작했다. 또 지난달 23일 A씨의 주거지 인근 피시방에서 피해자를 기다리던 김태현은 해당 장소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퀵 배달 기사로 속여 주거 침입해 살인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1인 여성 가구뿐만 아니라 2030 여성층 사이에서 일상 속 택배는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택배 송장 태우기', '싼 향수 뿌리기' 등 방법 공유 늘어나

노원구 세모녀 사건으로 택배송장 처리방법에 대한 글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SNS캡쳐

노원구 세모녀 사건으로 택배송장 처리방법에 대한 글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SNS캡쳐

‘싼 향수도 좋아요. 뿌린 뒤에 뜯어서 버리면 됩니다. 우리 모두 안전하게 살아요.’ 
노원구 세 모녀 사건으로 SNS에서는 이처럼 택배 송장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화제다. 택배 송장에 집 주소와 주문자의 이름 등이 나오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세톤, 싼 향수 등을 뿌리면 송장의 잉크가 날아간다', '생각보다 알코올로는 안 지워진다' 등의 후기가 공유되고 있다. 사생활 보호용으로 나오는 검은색 딱풀과 롤링 스탬프를 추천하는 글도 올라온다. 송장 위에 덧칠해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에도 2030 여성의 마음은 편치 않다. 서울 강남구에서 홀로 자취 중인 직장인 박모(27)씨는 “세 모녀 사건 이후 부모님이 걱정하는 연락이 많이 온다. 그중에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택배 송장 처리를 잘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세톤의 방법 등을 친구들과 많이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완전히 태우거나 파쇄기를 한 대 들여놔야 하나 싶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대면 배달에 대한 두려움↑ ‘곽두팔’ 가명 다시 인기

노원구 세모녀 사건으로 택배송장 처리방법에 대한 글과 후기들이 SNS에 공유됐다. SNS캡쳐SNS캡쳐

노원구 세모녀 사건으로 택배송장 처리방법에 대한 글과 후기들이 SNS에 공유됐다. SNS캡쳐SNS캡쳐

김태현이 대면 배달을 통해 주거 침입을 했다는 사실도 불안감을 조성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배달 이용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1인 여성 가구엔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범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비대면 배달'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걱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년 전 유행하듯 번진 '곽두팔', '육만춘'과 같은 택배 예명 리스트도 다시 등장했다. 이는 택배를 시킬 때 본명 대신 '센 이름'의 가명을 사용해 범죄 표적이 되지 않으려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여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주 세 보이는 이름 모음' 리스트가 돈다. 이 방법은 2019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늘면서 확산했다.    
 
2030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도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현실에 피로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직장인 정모(28)씨는 “자취하면서 음식 배달할 일이 많아 ‘집 앞에 두고 가달라’라는 요청 사항을 매번 한다. 하지만 노원구 사건 이후로 복도에 누군가 숨어있을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들어 배달도 줄여야 하나 싶고 주거 관리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무서울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이런 사건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퀵 배달 기사나 배달원을 무서움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도 서글프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