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구광모 회동이 분수령? 배터리 전쟁 합의 막전막후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지난해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이 지난해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LG와 SK가 약 2년을 끌어온 배터리 분쟁을 극적으로 타결하기까지는 한·미 정부 당국의 압박과 최태원·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두 회사 수뇌부의 잇따른 회동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합의 과정에서는 미 정부가 강력히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LG와 SK의 배터리 분쟁을 첨단 기술 분야의 안정적 공급을 위협하는 문제로 보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 안보실장 양자협의에서 미국 측은 LG와 SK의 소송전을 언급하며 미국 내 안정적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측도 미국 안보를 위한 노력 차원에서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2월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보고 핵심산업 분야의 취약성을 찾아내 보완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기차와 관련 인프라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 등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바이든 행정부는 배터리 역시 안정적 공급이 필요한 핵심산업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무역대표부(USTR)도 지난 2월 ITC의 최종 결정 이후 양사가 선임한 로펌 등을 각각 만나 두 회사의 합의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두 기업의 소송전이 ‘K-배터리’ 위기론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해 수차례 해결을 촉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와 3월 정부서울청사 정례 브리핑에서 “LG와 SK가 다투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국격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양사는 합의금 규모를 놓고 갈등을 이어가는 등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지난달 5일 권영수 LG그룹 부회장과 장동현 SK㈜ 사장이 만났지만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했다. 양측은 지난달 말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각각 소송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LG·SK 전기차 배터리 사업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LG·SK 전기차 배터리 사업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재계에서는 지난달 3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회동하면서 합의의 물꼬가 트이지 않았겠냐고 분석한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의 주선으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난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함께 자리했다. LG와 SK는 이를 두고 "최 회장과 구 대표의 만남과 이번 합의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두 회사의 총수가 미 대통령의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 거부권 행사 시한이 임박한 시점에 만나 어떻게 얘기를 안 할 수 있었겠느냐"며 "큰 틀에서 합의에 대한 교감을 나눴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로 LG와 SK는 모두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는 바이든 대통령이 ITC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금지 조처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 사업을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는 향후 SK가 미국에서 펼칠 다른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아가 한·미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사안이다.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한 최태원 회장으로서는 글로벌 사업을 차치하더라도 국내 기업과의 균열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LG 역시 소송이 길어지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지난달 31일(현지시간) ITC가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배터리 특허 침해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어주며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는 상반된 결과를 얻게 돼 소송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패권을 놓고 각국 기업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두 회사가 합의를 통해 소송리스크를 제거하고 투자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양측 모두에 긍정적"이라고 해석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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