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고성과 야유 쏟아졌던 ‘봄의 제전’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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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렬 사진 이석렬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22)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펼쳐진 무용 공연 ‘봄의 제전’은 예술의 역사에서 무척이나 요란한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이날 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공연에 음악을 제공한 작곡가는 러시아 태생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라는 작곡가였으며 공연을 기획한 이는 러시아발레단의 단장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였다. 디아길레프가 단장을 맡고 있었던 발레단은 신작의 무용 공연으로 파리의 공연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자 했다.
 
원시적인 분위기의 서주가 흘러나왔을 때부터 관객들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처녀가 죽을 때까지 춤을 춘다는 소재도 놀라웠지만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분위기의 음악도 관객들을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놀라움과 거부감이 극장의 분위기를 감싸고 관객들이 반대파와 지지파로 나뉘어져 대립의 양상이 벌어졌다. 격론이 벌어지고 객석의 여기저기서 고성과 야유가 튀어나왔다. 오케스트라의 요란한 음향을 배경으로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동작이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1913년 '봄의 제전' 초연. [사진 Wikimedia Commons]

1913년 '봄의 제전' 초연. [사진 Wikimedia Commons]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구상한 것은 1910년 5월 초였다. 이때는 발레음악 ‘불새’를 마무리할 즈음이었는데 작곡가의 상상력이 또다시 날아오른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화가이며 시인인 니콜라스 뢰리히와 함께 대본 작업에 들어가서 1912년 11월에 곡을 완성했으며 1913년 봄까지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봄의 제전’이 만들어진 것은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환상이 떠오른 것이 시작점이었다. 작곡가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상 속에서 장중한 제전을 보았습니다. 원을 그려 놓고 앉은 장로들이 한 처녀가 숨지기까지 춤추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들은 봄의 신이 노하지 않도록 그녀를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흥행사가 바로 그 유명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다. 그는 러시아 발레단의 단장이었고 흥행사로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디아길레프는 새로운 형태의 발레 공연을 추구하곤 하였는데, 그런 디아길레프에게 새로운 음악을 제공한 인물이 바로 스트라빈스키다.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에서 현란한 음향과 극적 고조,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충격적인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그가 창안한 음악은 청중들에게 심한 동요를 일으켰고 예술적으로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다. 이날의 공연은 정말로 현대 음악사에 중요한 모티브로 남았다.
 
독일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봄의 제전'. [사진 LG아트센터]

독일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봄의 제전'. [사진 LG아트센터]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킨 ‘봄의 제전’의 초연은 그야말로 파리 예술계의 화젯거리가 됐고, 그 덕분에 이후의 공연들도 성황리에 펼쳐질 수 있었다고 한다. '봄의 제전'은 희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파리 공연계의 자극제가 된 것이다.
 
지금도 다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 두 인물은 환상의 콤비로 회자되고 있다. 새로운 공연 무대를 창안하고자 했던 두 천재의 시도는 지금도 예술계의 칭송을 받고 있다. 스트라빈스키 자신도 ‘봄의 제전’으로 보기 드문 성공을 거뒀다며 흡족해했다고 한다. ‘봄의 제전’은 초연이 된 후에 오케스트라 연주만으로 공연되는 일이 잦아졌다. 현재는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되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파격과 천재성의 징표가 되었던 것이다.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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