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대구 간 김부겸 돌아왔다…총리 키워드는 통합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오후 임시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시 종로구 금융연수원에서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오후 임시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시 종로구 금융연수원에서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축하는 무슨…. 산적한 난제를 잘 마무리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얘기다. 그는 자신의 인사 배경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국민한테 보여주려는 국정 운영 기조와 관계가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총리로 내정하면서 보여주려는 메시지를 ‘통합’으로 읽고 있다. 김 후보자도 그런 기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총리 지명 직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총리 후보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협치와 포용, 국민통합에 더 많은 노력 기울이겠다”며 “대한민국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야당과 협의하고 협조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에게 ‘통합’이란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 건 그의 정치 역정 때문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당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TK(대구·경북) 출신이다. 1956년(호적상으로는 1958년 생)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중엔 학생운동을 하며 권노갑·한화갑 등 동교동계 인사들, 이해찬·유시민 등 현재 ‘친문(친 문재인)계’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사들까지 다양하게 교류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사진. [사진 김부겸 의원 페이스북]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사진. [사진 김부겸 의원 페이스북]

김 후보자는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1년엔 ‘3당 합당’ 반대파가 주축인 ‘꼬마 민주당’에 입당해 부대변인을 맡았다. 당시 대변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김 후보자는 당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의 뿌리인 한나라당 소속인 적도 있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으로 경기 군포에 출마해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003년 이른바 '탈당파 독수리 5형제'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며 다시 노 전 대통령과 한배를 탔다. 이후 17·18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당적으로 경기 군포에서 내리 당선됐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 때 돌연 지역구를 대구로 옮기겠다고 선언한다. 김 후보자는 2019년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큰 사고 안 치면 군포에서 국회의원 한 두 번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 우리 당의 불모지인 대구에 연고가 있으니까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자랑스러운 선배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준 감동을 다시 한번 해볼 필요도 있지 않나 싶었다.”

 
김 후보자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다. 득표율 40.4%로 선전했지만 결국 낙선했다. 2년 뒤 대구시장 선거에도 나서지만, 권영진 현 대구시장에게 패배했다. 또 2년 뒤, 그는 20대 총선에서 다시 대구 수성갑에 도전한다. 결국 김문수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며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던 TK에 민주당 깃발을 꽂는다. 1988년부터 총선이 소선거구제로 바뀐 뒤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처음이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임시 사무실이 마련된 금융연수원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뒤 건물 밖으로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1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임시 사무실이 마련된 금융연수원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뒤 건물 밖으로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주의 타파로 ‘리틀 노무현’이라고까지 불렸던 김 후보자는 일약 대권 잠룡으로 떠올랐다. 2017년 대선에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현 정부에선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다시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으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고, 당권에도 도전했지만, 이낙연 전 대표에게 졌다. 그는 이후 “지역 민심을 고루 듣겠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