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에 할 말 있다] 이준석 "진중권의 우려, 시대착오적 기우에 불과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페미니즘과 이대남(20대 남성)의 표심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다. 2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진중권 전 교수의 분석을 잘 읽었다. 앞으로도 진 전 교수와의 대화가 합리적이고 논증적인 영역에서 전개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반론한다.
 
2018년 12월 국민일보의 ‘한국 사회의 갈등’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여성 64%가 페미니즘을 지지했고, 20대 남성 75.9%는 페미니즘에 반대했다. 놀랍게도 이번 출구 조사에서 드러난 민주당+군소정당 20대 여성 득표율, 국민의힘 20대 남성 득표율에 각각 근사한다. 젠더 이슈는 2030의 정치적 판단에 있어 유일하지는 않지만, 주요 요인이다.
 
우선 2030 세대는 성별에 따른 기회의 불평등을 겪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의 유산인 할당제와 불합리한 가산점제를 재조정하고,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살리자는 말은 대체로 합리적이다. 일례로 창업경진대회에서 여성 3점, 장애인 0.5점, 국제 기능올림픽 입상자 0.5점의 가산점을 주는 상황은 시대착오적 여성 배려의 잔재다.
 
진 전 교수는 일자리나 계층 사다리 등의 담론에 집중하자고 한다. 그런 공정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첫 단추로 할당제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민생이 왜 무너졌는가? 유은혜(교육)장관이나 김현미(국토)전 장관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법률가지만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시행할 자질은 없었다. 이들은 내각의 30%를 여성에 할당하겠다는 할당제의 수혜자다. 민생이 급한 상황에서 최고 실력자를 기용하지 않고 수치적 성 평등에 집착했으니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한 진 전 교수가 젠더 이슈에 민감한 20대 여성 15%가 선택했다고 강조한 군소 페미니스트 후보들의 공통 공약은 여성 할당 50%다. 일부 후보는 국가대표 감독과 500대 기업 임원에도 적용하겠다고 한다. 이미 각종 고시에서 여성합격률은 50%대를 초월하거나 근사하게 유지되고 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이 담보되면 결과는 정의롭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안다. 20·30세대는 그 구호에 열광했던 것이고 그게 실현이 안 되니 심판한 것이다. 이미 기회가 평등한 경쟁의 결과는 가산점제와 할당 없이도 ‘정의롭게도’ 성비에 가깝게 나오고 있다. 시대착오적 가산점제와 할당은 공정한 경쟁의 구성요소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젠더 갈등이라는 위험한 장작에 불을 붙이는 ‘작용’을 한 것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사회 현상이나 범죄를 젠더 갈등으로 치환해 혐오를 키웠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수역 사건은 사건에 젠더 딱지가 붙어 젠더 갈등으로 비화한 사례다.
 
강남역 사건 당시 수사를 통해 범인의 정신병이 원인임이 밝혀졌지만 ‘여자라서 죽었다’라는 분열적 용어가 탄생했다. 이수역 사건은 점입가경이었다. 주점에서 있었던 남녀 간의 다툼을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아서 폭행을 당했다”며 청와대 청원을 올리며 젠더 갈등으로 치환했다. 그 청원에 수십만이 서명하며 여성 혐오 범죄로 몰았지만, 경찰이 CCTV를 확인하니 본인들의 성기가 남성의 성기보다 크다며 황당한 성희롱으로 먼저 도발한 건 여성들이었다. 진 전 교수가 이러한 집단적이고, 악의적이며, 적반하장인 ‘작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20대 남성들의 최소한의 ‘반작용’에 대해 타박하는 것은 현상의 반쪽만 이해하는 것이다.
 
진 전 교수가 우려하는 건 20대 남성들이 유럽식 대안 우파처럼 여성 혐오로 진화하는 것일 터다. 이준석의 언어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을 접하면 강하게 비판하기 바란다. 하지만 막연한 기우는 사절하겠다. 여성 혐오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이준석은 여성 좋아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진중권 "태영호만 제정신이다···'이대녀'를 보는 여야의 착각"

※ 아래 글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반론글을 게재하게 된, 21일자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전문입니다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말이다. 20대 남성으로부터 72%에 가까운 몰표를 받자 잔뜩 고무된 모양이다. 그는 이를 ‘이대남(20대 남성)’의 반여성주의에 편승해 온 제 전략이 주효한 결과로 푼다.
 
젠더에 반응한 것은 이대녀
 
이는 순전히 그의 개인 이데올로기로, 객관적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1%는 ‘집권여당이 잘못해서’ 국민의힘을 찍었다고 대답했다. 18%는 성추행을 한 ‘전임 시장의 잘못에 대한 심판’이라 답했다. 유권자의 79%가 민주당이 싫어 야당에 표를 줬다는 얘기.
 
실제로 긍정적 이유에서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답변은 극히 적었다. ‘정책과 공약이 좋아서’(3%), ‘후보가 좋아서’(3%), ‘정당활동을 잘해서’(1%), 다 합쳐 7%에 불과하다. 이준석의 반여성주의 캠페인이 이중 어느 항목에 속할지 모르겠으나, 그 영향은 무시해도 좋을 양에 불과하다.
 
의식조사에서 20대의 성평등의식은 다른 세대보다 외려 나은 것으로 나타난다. 남녀 간 인식 격차도 다른 세대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과잉대표되는 인터넷 목소리들 때문에 착시에 빠져, 다들 성추행으로 인한 선거에서 고작 반여성주의의 교훈을 배우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젠더 이슈에 반응한 것은 이대남이 아니라 이대녀(20대 여성)들. 그들 중 15%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대녀에게서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적은 표를 얻었다. 요인은 ‘젠더’밖에 없다. 즉, 이대녀들이 민주당에 실망을 했다면 국민의힘에는 아예 기대 자체를 안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국민의힘에서 젊은 축에 속한다는 이 전 최고위원의 말을 들어 보자. “이공계 여성학생의 비율이 20%인데 국가장학금의 35%는 여성에게 주라고 칸막이를 세워버리면 이게 공정인가 불공정인가.” 한마디로 기계적 공정을 위해 구조적 불평등을 보정하는 장치들을 없애자는 얘기다.
 
여성할당을 없애자?  
 
그런 논리라면 비례대표 1번을 여성에 주는 것은 공정인가 불공정인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 할당은 어떤가? 그저 젊다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주는 것은 공정인가 불공정인가. 기존 정당에서 ‘박근혜 키즈’가 아닌 평범한 청년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공천받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지역·성별·인종에 따른 차별을 보정하는 제도로 불이익을 보는 ‘개인’은 당연히 그것을 부당하다고 여길 것이며, 그 감정은 정당하다. 그럼에도 그 제도가 필요한 것은 그로 인한 ‘사회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고로 갈등은 불가피하며, 그것을 조정하는 활동을 우리는 ‘정치’라 부른다.
 
포퓰리스트는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려 한다. 그들은 한 계층의 좌절을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로 유도해 표를 챙기면서 그들을 좌절시킨 그 상황은 영속화한다. 그로써 좌절을 잠시 잊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상황에 변함이 없는 한 그 좌절은 더 깊어질 뿐이다.
 
좌절의 진짜 원인은
 
20대 젊은이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놓고는 대체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대기업·중소기업의 임금격차, 그리고 교육의 양극화로 인한 계층 사다리 소멸. 언제부터인가 한국이 세습사회로 변모해 젊은 세대가 가망 없는 경쟁에 내몰린 것이 원인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원인’을 찾아 고치는 대신에 ‘범인’을 지목해 공격하는 식으로 문제를 피해간다. 그렇게 범인으로 호출된 것이 여성주의. 이대녀는 이대남과 똑같은 고통에 일상의 성차별까지 받는데, 군가산점 도입하고 여자들 징집하고 여성 할당 폐지하는 식으로 문제가 풀리겠는가?
 
이대남은 여당의 페미니즘 정책(그런 게 있었나?)에 반발해 야당을 찍은 것이 아니다. 그저 청년실업률 10%의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 평등을 외치며 공정마저 무너뜨린 여당의 위선을 심판하기 위해 제1야당에 표를 준 것뿐이다. 그 요구를 정직하게 받아 안아야 한다.
 
젠더 이슈에 민감한 이대녀들은 국민의힘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럴 만하다. 여성단체의 질의에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을 강요하지 말라”며 ‘답변거부’ 했다고 아예 자랑을 하는 당에 어떻게 표를 주겠는가. 그래서 민주당을 떠난 15%가 국민의힘 대신 페미니스트 군소정당에 간 것이다.
 
잘못된 진단, 그릇된 처방
 
이대남의 표는 바람의 힘으로 겨우 담에 붙어 있는 종이와 같다. ‘심판’의 바람이 멈춘 후에도 종이가 담에 붙어 있으려면,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진짜 원인을 직시하고 거기에 정직한 해법을 내놔야 한다. ‘이 당에도 답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 지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게다.
 
범인을 지목하는 것으로 이대남들의 분노를 잠시 풀어줄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회피. 본질적 문제를 감추어 둔 채 지속적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반여성주의 캠페인은 국민의힘으로 올 수도 있었던 이대녀 15%를 민주당으로 되돌릴 뿐이다.
 
20대 남성들의 정치의식이 40~50대의 남성과 다르듯이 20대 여성들도 윗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성평등의식을 강하게 표출한다. 지금 10대들이 20대가 되면 성평등 의식을 더 자유로이 표출할 것이다. 언젠가 이들이 인구의 50%를 차지할텐데,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정당은 희망이 없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이대남 표를 잡겠다고 이미 위헌판정을 받은 ‘군가산점’과 ‘여성 징집’을 떠든다. 자신들의 진짜 오류엔 눈을 감고 반여성주의 물결에 편승해 전도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변태짓을 하면 간신히 붙어 있는 이대녀들마저 곧 민주당을 떠날 게다.
 
태영호 의원의 정치감각
 
여야를 통틀어 제정신 가진 정치인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밖에 없다. “20대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했다기보다는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가가려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들의 고충인 취업·주택·공정 등 문제에서 정책적·구조적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20대의 마음을 이끌었다는 안도보다는, 왜 여전히 ‘이대녀’들의 표심을 얻지 못했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올바르고, 전략적으로도 현명한 판단이다. 어떻게 남한에서 나고 자란 청년의 감각이 북한에서 온 노인의 그것만도 못한가.
 
선거 직후 이 전 위원은 ‘4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썼다. 선거 승리를 자신이 4년에 걸쳐 페미니스트와 벌여온 전쟁의 성과로 오독한 것이다. 하지만 남녀 불문 모든 연령에서 민주당을 압도한 국민의힘이 왜 유독 이대녀에서만 뒤졌을까? 거기에 그의 반여성주의도 한몫했을 게다.
 
누구의 길을 갈 것인가
 
야당은 여당의 실수를 먹고산다지만 남의 실수를 먹는 데에도 실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중도가 국민의힘에 붙은 것은 김종인 비대위에서 5·18과 두 대통령에 대해 사과하고, 경제민주화·기본소득·성평등을 강조한 새 정강정책을 마련한 덕. 여기서 퇴행하면 실수도 주워 먹지 못하게 될 게다.
 
인터넷에 흘러넘치는 반여성주의 언설은 여론이 아니다. 그것들은 애초에 공론장에 들여올 만한 게 못 된다. 얼마 전 어느 편의점 주인이 알바 채용 공고에 페미니스트 사절이라 적었다. 영웅으로 칭송받기는커녕 그는 빗발치는 비난에 사과를 해야 했다. 이게 여론이요, 이게 공론이다.
 
혐오는 좌절의 산물이다. 정치인이라면 반(反)여성주의로 표출되는 그들의 분노를 합리적으로 가다듬어 올바른 정치적 요구로 정식화할 줄 알아야 한다. 백인 하층의 좌절을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바꾸어 집권한 트럼프. 그게 오래 가겠는가? 기어이 미국을 망가뜨리고 재선에 실패했다.
 
이 전 위원의 말과 달리 민주당은 페미니즘에 올인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 당의 페미니스트들마저 박원순 전 시장에 관해선 반여성주의적으로 행동했다. 그들의 태도는 이 전 위원의 캠페인에 환호하는 이들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왜 피해자 말만 듣고 남성을 가해자로 단정하는가?’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은 이준석과 태영호.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이준석은 틀렸고, 태영호가 옳다. 야당은 태영호의 길을 가라. 차별하는 자, 차별받는다. 차별받으니 차별하는 것이다. 남녀 갈라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여성 해방 없이 남성 해방 없고, 그 역도 성립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