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나는 쓰레기구나" 수천억 부자 만든 깨달음

'벤처기업의 효율적 성장에 기여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스타트업 고위드의 김항기 대표. 여느 스타트업처럼 대표 집무실이 따로 없다. 김 대표 책상은 고위드 사무실 제일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우상조 기자

'벤처기업의 효율적 성장에 기여한다'는 목표로 설립한 스타트업 고위드의 김항기 대표. 여느 스타트업처럼 대표 집무실이 따로 없다. 김 대표 책상은 고위드 사무실 제일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우상조 기자

부잣집 3대 독자였다. 아버지가 딸 넷 낳고 나이 마흔에 본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엄격하기만 했다. 기사 딸린 자가용 타고 가면서도 옆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아들은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학교까지 일곱 정거장을 걸어야 했다. 그런다고 가난을 알 턱이 없다. 절실한 게 없어서인지 공부는 시들했다. 오죽하면 4년제 대학 가겠다는 얘기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넌 참 야망도 크다"고 할 정도였을까. 대학(건국대 무역학과) 입학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절 좋던 1990년대 초반, 부자 친구들과 어울려 호텔 나이트클럽을 전전했다. 
업계에 알려진 개인 자산 규모만 수천억 원대, 자기자본 1000억원을 넣어 2019년에 설립한 스타트업 '고위드' 김항기(47) 대표의 과거 얘기다. 고위드 전엔, 증권사 브로커를 거쳐 창업했던 자산운용사(알펜루트)가 BTS 소속사 빅히트(현 하이브)와 미국 직상장을 준비 중인 마켓컬리 등에 초기 투자해 큰돈을 벌면서 주목받았다. 이런 배경만 들으면 '아빠 찬스'로 취미 삼아 투자사업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지금 재산은 단돈 1원도 부모로부터 지원받지 않고 직접 일궜다. 내세울 학벌 하나 없던 부잣집 도련님은 어떻게 금융의 판을 바꾸겠다는 대담한 야망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어가는 혁신적인 도전자가 됐을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호림미술관 14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직접 얘기를 들었다. 
-고위드는 '스타트업에 법인카드 만들어주는 회사'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어떤 회사인가. 
"배경 설명부터 하자. 세상의 축이 바뀌었는데 기존 금융은 이런 흐름을 못 따라간다. 당장 이익이 나고 담보 가치가 있는 등기 자산(부동산)이 있어야 대출해주는, 한마디로 20세기 금융에 머물러 있다. (아마존이나 애플처럼) 시가총액 1000조~2000조원 짜리 회사가 연 40%씩 성장하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 눈앞에 벌어지는 시대에 말이다. 과거 잣대로만 평가하니 가치 기준이 전혀 다른 혁신기업들은 금융의 혜택을 받지 못 한다. 대신 지분을 내주는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만 돈 버는 구조다.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뉴욕증시 상장으로 대박을 냈다지만 지분 10%에 불과하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지분 33%의 최대주주다. 마켓컬리 김슬아 창업자 지분은 6%에 불과하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받으면 지분이 희석될 수밖에 없기에 창업자들은 어느 단계에 다다르면 '요 정도만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큰 혁신이 이뤄지지 않으니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기존 금융은 이처럼 본연의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거꾸로 보면 100년 만에 (기존 금융 모델과 다른) 새로운 큰 시장이 열리는 참이다. 이 시장을 잡을 수 있겠다, (우리가 보유한 스크래핑을 활용한 신용평가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게 고위드다. '벤처기업의 효율적 성장에 기여한다'는 목표 아래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모든 과정이 우리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마디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이다. "
-왜 모든 '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인가. 

"지금 금융은 웬만한 중견·중소기업에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기존과 전혀 다른 형태의 성장하는 기업에 자금이 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돈 되는 곳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거다. "
-법인카드 발급부터 시작한 이유는. 

"고객 입장에서 보자면, 창업 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불편이 법인카드다. 개인은 실시간으로 신용을 평가받아 바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않나. 그런데 법인은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재무제표로 심사받기에 길게는 1년 반 전 자료로 평가받는다. 세상은 리얼타임인데 금융만 따로 논다. 재무제표와 사업자등록증, 법인 인감 등 15개 서류를 전부 준비해서 창구에 앉아 4시간 동안 40군데 서명을 해도 대표의 연대보증이나 담보 없이는 거절당하기 일쑤다. 우리는 국내 1위 스크래핑(데이터 추출) 기술을 토대로 실시간 현금 흐름을 측정하는 자체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한 덕분에 10분 만에 비대면으로 발급한다. 스타트업은 따로 서류를 준비할 필요조차 없이 온라인으로 카드 신청만 하면 된다. 지난해 8월 신한카드·롯데카드와 제휴해 발급을 시작했는데 현재 고객사가 600여 개다. 올 연말까지 1만 개가 목표다. 우리 입장에선 데이터가 쌓일수록 정교해지고 빨라지기 때문에 데이터를 쌓기 용이한 신용카드가 매력적이다. "
※고위드 법인카드를 발급받은 스타트업은 대표나 재무 관리자뿐 아니라 모든 임직원이 고위드 앱을 통해 본인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법인카드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승인할 수 있다. 조직 내 투명성을 높여주는 동시에 지출 관리를 쉽게 해준다. 

고위드 앱을 열면 직장 내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항기 대표(오른쪽)와 직원이 각자의 휴대전화로 상대의 법인카드 사용 금액을 살펴보고 있다 . 우상조 기자

고위드 앱을 열면 직장 내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항기 대표(오른쪽)와 직원이 각자의 휴대전화로 상대의 법인카드 사용 금액을 살펴보고 있다 . 우상조 기자

-다음 목표는. 
"클릭 한 번으로 이뤄지는 대출이다. 실시간으로 변동비와 고정비를 분리해 돈을 버는지, 현금흐름에 문제가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면 은행을 설득해 스타트업들에게 성장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벤치마크로 삼는 건 엄청난 성장세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브렉스(brex) 카드다. 브라질 출신 스탠퍼드 학생 둘이 2017년 만들자마자 4개월 만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에 올라섰고, 설립 5년 차인 지금은 카드 발급, 비용 관리를 넘어 스스로 은행이 돼가고 있다. "
-인적 구성, 연봉, 기업문화 등이 궁금하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에 회사 내에 리크루터를 따로 뒀다. 현재 50명인데 회계사 등 금융 관련 5명, 자기 사업하던 사람 20명, 개발자 25명이다. 평균연령은 32세다. 신입사원 초봉은 5000만원이 넘는다. 인재 유출을 막는다고 최근 넥슨이 개발자 초봉을 500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게임업계에 연봉 인상 경쟁이 벌어졌지만 우리는 이미 그 전부터 대기업보다 더 줬다. 연봉에 스톡옵션은 기본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회사는 무슨 꿈을 꾸냐, 그 꿈은 실현 가능하냐, 나는 그걸 원하냐' 이런 조건에 부합해야 온다. 주인의식이 없으면 딱 받은 만큼만 일한다. 우리 회사에 연차 불문 법인카드 한도가 없는 이유다. 어떤 달엔 막내가 대표보다 더 많이 쓴다. 법인카드 많이 쓴 사람을 '일 많이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후진 회사일수록 '뭐 하느라 법인카드 이렇게 많이 썼어' 한다. 극단적인 투명성은 좋은 기업의 필요조건이다. 일해야 할 머리를 다른 데 쓰게 하면 안 된다. "
-첫 직장이 대우증권이던데, 그 시절 SKY 아닌 학벌로 여의도를 어떻게 뚫었나.
"대학 때부터 주식투자를 했다. 이를 토대로 27살에 주식 트레이딩 교육을 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나중에 유명 증권사·경제신문으로부터 큰 투자를 받는 등 사업은 그럭저럭 됐지만 너무 힘들어서 대우증권에 팔고 지점 브로커로 입사했다. 30대 초반에 주식 투자로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큰돈을 벌었는데 2006년 첫 아이가 태어날 무렵 회의가 들었다. 최대로 잘 포장해봐야 나는 유동성 공급자더라. 돈은 많지만 피폐하다고 느꼈다. 스스로 연봉의 95%를 깎으며 법인 영업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탐방 다닐 때 따라다니며 공부했다.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반 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써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당시 업계에선 '그 종이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다른 증권사 영입 제의를 받았을 때도 주겠다는 연봉의 반만 받겠다고, 증명하면 나중에 몰아서 달라고 했다. "
-그런 근성이 왜 학창 시절엔 없었을까.  
"군대가 계기다. 그 전까진 못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비록 방위지만 군대에 가니 환경이 전혀 다른 사람과 강제적으로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돈은 없는데 열심히 사는 똑똑한 사람들을 보면서 컬처쇼크를 받았다. 나는 쓰레기구나. 이대로 사회에 나가면 이런 사람들이랑 붙어야 하는데 백전백패겠구나를 깨달았다. 무섭게 공부했다. "

-학벌 때문에 불편한 건 없나. 
"딱 하나다. 매번 증명해야 한다는 거. 아버지가 남들 눈에 장점이 단점이고 거꾸로 단점이 장점일 거라 했다. 부자 아버지 둔 게 장점처럼 보이는 단점이고, 꾸는 꿈 대비 학벌이 나쁘다는 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대로 했다. 나 무식한 거 아니까 뭐든 물어봤다. 그 덕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머리 좋은 사람들, 특히 주변의 서울대 출신들은 모른다는 걸 인정 안 하고 표현하길 어려워한다. 발전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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