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렸다 단칼에 해결…'일도' 이한동 전 국무총리 별세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뒤 2000년 제16대까지 6선 의원을 지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JP화보집 운정 김종필' 출판 기념회 축사 모습. 연합뉴스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뒤 2000년 제16대까지 6선 의원을 지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JP화보집 운정 김종필' 출판 기념회 축사 모습. 연합뉴스

 
‘3김 시대’라 불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괄목할만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거물 정치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 전 총리의 측근은 이날 “이 전 총리가 정오께 숙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정해졌다.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고인은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법조인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그는 제5공화국 초기이던 1980년 정치에 입문해 1981년 총선부터 내리 6선을 했다.  
 
민주정의당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한 그는 이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기며 정치적 격랑을 헤쳐나갔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원내총무를 맡을 정도로 정치력을 인정받았다. 
 
율사 출신답게 정연한 논리를 구사하면서도 호탕한 성격의 호걸형으로, 친화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때를 기다리다 단칼에 해결하는 결단력이 돋보여 ‘일도(一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국무총리에 재임하던 지난 2005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대독하는 모습. 중앙포토

국무총리에 재임하던 지난 2005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대독하는 모습. 중앙포토

 
노태우 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DJP연합’을 통해 탄생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2년 2개월 간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에 이은 3번째 총리였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통해 임명된 최초의 총리이기도 했다.   
 
대선에도 문을 두드렸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에는 이른바 9룡 중 한 명으로 꼽혔지만 이회창 대세론에 막혔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JP)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를 맡았다. 2002년에는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출마해 완주했지만 낙선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는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처럼 여야를 넘나들며 통합을 추구했다. 2018년 발간한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에서도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강조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