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퍼사이클’ 가능성에…"5월 물가상승 3% 넘을 수도"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10여년 만에 원자재 ‘수퍼 사이클’(장기 상승세)이 재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에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더해지면 인플레이션 압박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산업통산자원부ㆍ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대표적인 원자재 지표인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S&P GSCI)는 9일(현지 시간) 526.28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직전인 지난해 1월(443.35)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S&P GSC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골드만삭스 원자재지수(S&P GSC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격 영향력이 가장 큰 원유(두바이유 기준)의 경우 지난주 배럴당 66.21달러에 거래됐다. 올해 초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고유가 시나리오(65.69달러)보다 높은 가격이다. 골드만삭스는 원유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올 하반기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친환경 기술의 핵심 원자재인 구리는 런던금속거래소에서 t당 1만361달러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요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저탄소 경제’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신재생 에너지 설비ㆍ전기차 등에 쓰이는 구리ㆍ알루미늄ㆍ리튬ㆍ팔라듐 등은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유가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에는 철광석 가격 급등으로 건설ㆍ완성차ㆍ가전업계가 비상이 걸렸다.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3월 t당 150달러에서 지난주 201.88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t당 200달러를 돌파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초 t당 70만 원(SD400, 10㎜)이던 철근 가격이 지난주 93만원까지 올랐다”며 “ 제때 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 지연 사태도 발생하고, 거푸집 제작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전했다.
 
농산물 가격도 고공비행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달 120.9를 기록, 지난해 5월(91.0) 이후 줄곧 상승세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옥수수는 지난해 5월보다 136% 오르며 8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고, 대두(88.5%)ㆍ생돈(84.9%)ㆍ원당(Raw Sugar.62.4%)ㆍ커피(아라비카. 37.8%) 등도 많이 올랐다. 미국ㆍ유럽ㆍ브라질 등 주요 생산국에서 기상여건 악화 등으로 작황 부진이 예상된 영향이 크다.  
세계식량가격지수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세계식량가격지수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 미국 주요 투자은행은 원자재 가격이 10여년 만에 수퍼 사이클을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4차례의 수퍼 사이클에서는 경기개선 기대감, 달러화 약세, 인플레이션 흐름 등이 공통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근거로 다섯 번째 장기 상승세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예단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주마나 살리힌 CRU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사이클에 더 가깝다”고 했고, 데이비드 로젠버그 로젠버그리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퍼 사이클이라는 말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걱정은 소비자 물가 상승이라는 후폭풍이다.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만큼, 원자재 가격 인상분은 조만간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전망이다. 
구리 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리 가격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당장 원자잿값 인상이 국내 제조업체들에는 원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원가 인상분을 가격에 당장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제조업체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제품 가격을 밀어 올릴 수 있다.
 
식품 가격도 사정권이다. 식량자급률이 2019년 기준 45.8%로, 쌀을 제외한 상당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 식량 가격 상승은 국내 물가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한국의 3월 식품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8.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미국 소비자가 마트에서 구매하는 가공육ㆍ과일ㆍ채소ㆍ주방용품 등 각종 소비자 제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두 자릿수의 가격 상승 폭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신생아 기저귀와 여성용품은 물론 냉장고ㆍ식기세척기 등 가전제품의 가격도 점점 비싸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WSJ는 “원유와 곡물 등 원자재가격과 물류ㆍ인건비 등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각국 정부가 재난 극복을 위해 쏟아부은 과잉 유동성과 그간 억눌렸던 ‘펜트업(지연ㆍ보복) 소비’까지 더해지면 인플레이션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공업제품, 서비스 가격 등에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며 “5월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를 넘을 수 있으며, 여름까지는 높은 물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우리(현대경제연구원)가 올해 물가 상승률을 1.7%로 전망했는데, 그때 생각하지 못한 (물가 상승) 요인들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이억원 기재부 차관은 "3분기부터는 기저효과가 완화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연간 기준으로 물가안정목표인 2%를 상회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 과도한 인플레이션 기대로 확산되지 않도록 물가 안정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손해용ㆍ임성빈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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