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선 뜨자 전교생이 웃었다…30년간 ‘바다 지킴이’ 길러낸 교장쌤

김상환 선생님(가운데)과 정복을 갖춰입은 인천해사고 학생들이 교정을 걷고 있다. 사진 인천해사고 제공

김상환 선생님(가운데)과 정복을 갖춰입은 인천해사고 학생들이 교정을 걷고 있다. 사진 인천해사고 제공

지난 11일 오전 9시 20분쯤 하얀 대형 선박 한 척이 인천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남 해남에서 출발한 이 선박은 인천해사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해기사 실습선인 한나래호다.
 
인천해사고는 선박을 운용할 수 있는 해기사를 길러내는 전국에 둘뿐인 고교다. 그동안 인천해사고 학생들은 승선실습을 위해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까지 가야 했다. 인천항을 모항으로 하는 해기사 실습선이 하나도 없어서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웠던 선생님들은 3년 전부터 실습선 도입을 추진했고, 결실을 봤다. 그 중심엔 평교사를 거쳐 교장까지 30여 년째 인천해사고에 몸담은 김상환(59) 선생님이 있다.
 
지난 11일 해기사 실습선 한나래호가 인천항에 들어왔다. 사진 인천해사고 제공

지난 11일 해기사 실습선 한나래호가 인천항에 들어왔다. 사진 인천해사고 제공

모교 부름에 시작한 교직 생활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선장. 경북 영덕에서 자란 김 교사의 꿈이었다. 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한국해양대 졸업 후 외항선에 올랐다. 항해사로 세계 곳곳을 오가던 1991년 어느 날, 모교인 부산해양고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왔다. 선박 조종·항해 법규 과목을 가르칠 교사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고민 끝에 부름에 응했다. 졸업생으로서 후배의 성장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후 부산해양고가 인천·부산 선원학교와 합쳐지면서 김 교사는 인천해사고로 전근을 왔다. 30년에 걸친 ‘바다 지킴이’ 양육의 시작이었다.
 

4형제 모두 제자로 둔 선생님 

인천 해사고는 전교생이 승선생활교육관(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학생 관리는 교사의 몫이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기숙사 사감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자리지만 김 교사는 7년간 그 자리를 자처했다.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격의 없이 다가서는 그에게 학생들도 마음을 열었다. 빛나는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탈에 빠진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그에게 가슴으로 낳은 아들과 딸이었다.
 
30여년간 만난 제자 모두가 소중하지만 김 교사는 15년 전부터 연이어 인천해사고에 입학한 4형제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졸업한 3명은 항해사가 돼 바다로 나갔고, 3학년 막내는 형들을 동경하며 매일 구슬땀을 흘린다. 4형제의 부모는 아들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인문계 고교를 그만두고 뒤늦게 인천해사고에 입학해 지금은 인천해수청에서 일하는 여학생,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초대형 LNG 선박의 최연소 선장이 된 남학생 등은 그가 교사생활을 이어 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이다. 바다에서 돌아오면 꼭 모교에 들르는 제자들과 옛이야기를 할 때면 선장을 포기하고 교편을 잡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는 게 김 교사의 말이다.
 

“학생들이 사회의 빛과 소금 되길”

인천해사고 학생들이 항해 관련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인천해사고 제공

인천해사고 학생들이 항해 관련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인천해사고 제공

교장 공모제를 거쳐 교장이 된 김 교사의 남은 임기는 2년 반 정도다. 그는 임기를 마치면 다시 기숙사 사감으로 학생들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인천해사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해상 안전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잖아요. 평생을 해양교육에 힘쓴 만큼 저와 학교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있어요. 아이들이 사회에 필요한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30여년간 ‘바다 지킴이’를 길러온 김 교사의 스승의 날 바람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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