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까지 고민했는데···의식 없던 딸, 극적으로 눈 떴다

지난 1월 31일 오전 1시쯤 이대서울병원 응급실에 20대 여성이 실려 왔다. 환자는 쇼크 상태였고 혈압, 맥박이 거의 안 잡혔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CPR)을 하면서 인공심폐장치(에크모·ECMO) 치료를 시작했다. 응급실에서 에크모를 다는 건 흔치 않다. 통상 혈관조영실에서 혈관 위치를 보면서 간호사, 방사선사 도움을 받아 시술한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급박해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여성은 그 뒤 6일 만에 극적으로 눈을 떴다. 
심장중환자실 의료진이 열어준 이희선씨의 생일 파티. 사진 이대서울병원 제공

심장중환자실 의료진이 열어준 이희선씨의 생일 파티. 사진 이대서울병원 제공

 
사연의 주인공은 21살의 이희선 씨다. 이대서울병원은 10일 심장질환으로 쓰러졌다 제2의 삶을 찾은 이씨 사연을 전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이씨는 선천성 심장병인 비후성 심근병증을 앓았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벽이 두꺼워 심장 기능을 방해하는 병이다. 이씨도 심장 기능이 일반인의 6~9%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신상훈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증의 경우) 심장 근육이 정상적이지 않고 섬유화돼 있거나 정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부정맥을 잘 일으킨다”며 “이 때문에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이씨도 부정맥이 발생해 쇼크 상태에서 심정지가 왔던 것으로 신 교수는 보고 있다. 유전적 질환이라 이씨 아버지가 동일한 병을 앓아 사망했다. 이씨의 오빠, 동생도 심장병으로 병원을 오가던 터였다. 이씨는 평소 호흡곤란 등 특별한 이상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이미 남편을 같은 병으로 떠나 보낸 이씨 어머니였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누워 기계장치에 의지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이씨가 남편의 모습과 너무 같았다. 입원 이틀 뒤 이런 쪽지를 신 교수에 전했다.  
 
“2/14(희선생일)까지 기개(기계)하고 뇌사여(이)면 가능하다면 기증(장기조직) 하고 싶습니다.”
이희선씨 어머니가 신상훈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에게 건넨 쪽지. 사진 이대서울병원 제공

이희선씨 어머니가 신상훈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에게 건넨 쪽지. 사진 이대서울병원 제공

 
일본인인 이씨 어머니는 서툰 한국어로 2주 후 이씨 생일에도 깨어나지 못하면 당일 장기를 기증하겠단 의사를 전달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덤덤한 모습에 신 교수가 당황했다.  
 
신 교수는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 장기기증 팸플릿이 있는데 딸 상태를 보니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던가 보다”며 “환자 상태가 워낙 불안정해 사망 위험이 크긴 했지만, 자식의 장기를 먼저 기증하겠다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겠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씨 어머니를 말렸다. 
 
딸의 죽음을 각오한 어머니에 이렇게 입을 열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제가 더 세심히 치료할 테니 경과를 보고 다시 생각해보시지요.” 그러면서 오히려 “혈압이 안정되고 의식이 돌아올 수 있다면 심장 이식을 고려해야 한다. 장기를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걸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간절함이 이뤄졌다. 이씨는 입원 4일 만에 에크모를 떼더니 6일째엔 눈을 떴다. 이후 제세동기삽입(ICD) 시술을 시행했고 입원 20일 만에 건강하게 병원 문을 나섰다. 김동혁 순환기내과 교수의 헌신적 치료도 이씨의 회복에 한몫했다. 김 교수는 희선씨의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된 뒤 ICD 시술을 맡았다. 이씨 몸에 큰 흉터가 남게 될 것을 걱정해 직접 드레싱을 꼼꼼히 할 정도로 챙겼다.  
 
생일이 사망일이 될 수 있었던 이씨 21번째 생일은 제2의 삶을 기념하는 축일이 됐다. 의료진들은 코로나19로 중환자실을 찾지 못하는 가족을 대신해 생일잔치를 열어줬다.
 
신 교수는 “회복된 게 고맙기도 하고, 특별한 생일인 만큼 축하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이후 편지를 통해 “하늘이 내려준 분 같다. 어떻게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시대에 진정한 의술을 베푸는 의사의 모습을 봤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문구와 함께였다.  
 
신 교수는 “이씨가 심정지로 응급실에 왔을 때 응급처지가 잘된 천운에 가까운 케이스였다”며 “비후성 심근병증을 가진 환자들은 언제든 심정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 및 조기 치료가 제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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